전투기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점증할 경우 우리 공군 조종사와 기체의 피로가 누적돼 자칫 안전사고까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곤경이 예상되지만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국형 전투기(KF-X)가 실전 배치될 오는 2020년대 중반까지는 현재의 전력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영공 침범에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미군의 도움을 받아 북한을 상대하는 전력을 가꿔온 군의 입장에서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형국을 맞이한 셈이다. 조기경보기와 장거리 전투기 추가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안으로 나오고 있다.
◇쉽지 않은 완벽 차단 작전=중국과 러시아가 연합비행 훈련을 실시한 지난 23일 한국 공군은 놀라운 대응력과 의지를 보여줬다. 이날 발생한 ‘상황’은 모두 4개. 중국 군용기 2대가 이어도 쪽으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을 들락거리고 러시아 군용기 2대가 동해 북방으로부터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은 연합 편대 비행에 들어갔다. 이들과 경고사격을 실시했던 기종인 KF-16 전투기는 물론 각 비행단의 전투기를 지휘 통제하는 시스템이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작동한 결과다.
문제는 이 같은 대응력이 연속해서 발휘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날 공군은 KF-16과 F-15K 전투기 00대를 동원해 대응작전을 펼쳤다. 중국과 러시아의 구형 기체들을 추적하는 데 전투기 수십 대가 동원된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의 항속거리는 긴 반면 우리 전투기의 행동반경은 짧다. 번갈아 출격해 교대로 추적할 수밖에 없다. 단순한 초계비행 또는 추적비행이 아니라 긴급발진, 차단기동, 경고사격을 위해 기동할 경우 전투기의 연료 소모는 더 크다. 한국 공군 전투기의 구성을 보면 장거리 대응 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우리 공군은 168대의 F-16 전투기와 KF-16(F-16의 국내 면허생산형) 전투기 168대를 중부 2곳과 호남 1곳의 공군기지에서 운용하고 있어 동해 상공에서의 작전이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강릉 지역 등에 이들 전투기를 배치하는 방안도 내놓지만 전방 지역에는 F-5급을 배치하고 중부 내륙 이남에 일선급 전투기를 배치하는 원칙에서 벗어난다. 원칙이란 필요에 따라 깨지는 것이나 전투기 배치원칙에 따라 정비와 보수, 후속 군수지원 시스템도 연동돼 기지 이전 또는 전방 배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더욱이 이들 전투기의 가용 대수는 더욱 줄어들 예정이다. 연간 1개 대대분의 기체가 개량을 위해 창고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특정 기종 피로도 누적 우려=장거리 임무 투입이 가능한 전투기는 사실상 F-15K 한 기종뿐이다. 항속거리가 길고 쌍발 엔진인 전투기는 F-4E 팬텀 전투기도 있으나 개량형이 아닌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뿐일 만큼 노후 전투기여서 초계 및 차단 작전 투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23일 독도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조기경보기에 대해 항속거리가 짧아 지속적인 전투능력이 떨어지는 KF-16 전투기가 기관포를 발사한 것은 시간대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덕분이다. 무장을 갖춘 KF-16 전투기는 중부 내륙의 기지에서 이륙해 독도 부근에서 체공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0분이다.
결국 대구 공군 기지의 F-15K 전투기 59대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문제가 하나 있다. F-15K 전투기는 지금도 한계에 가까울 정도로 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F-15K 조종사들의 연간 비행시간은 한국 공군 평균보다 1.56배 수준에 이른다. 지금도 임무가 많은데 더 늘어나면 조종사와 기체 피로가 심해져 안전 및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운용 대수가 많지 않은데다 부품 수급이 여의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부품이 부족해 다른 전투기의 부품을 떼서 쓰는 이른바 ‘동류 전환’이 많아 해마다 국정감사에 지적당하는 전투기가 바로 F-15K다. F-35A 스텔스 전투기가 실전배치가 완료되더라도 장거리 타격 임무를 계속 맡아야 할 핵심 전력인 F-15K 전투기가 자칫 속으로 멍들 수 있는 상황이다.
◇중·러 군사적 위협 점증, 불 보듯=반면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은 더욱 늘어날 게 확실시된다. 23일 상황이 발생한 뒤 불과 하루 만에 러시아는 중국과의 연합비행 실시를 공식화하며 앞으로 더 많은 연합훈련을 실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러시아는 특히 한국 공군의 경고사격에 강하게 반발하며 자위조치를 취하겠다는 으름장도 놓았다. 자위조치란 호위전투기를 붙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중국과 연합훈련 첫날 한국 전투기의 경고사격을 받아 자존심이 상한 러시아가 어떻게 나올지 우려된다. 호위전투기를 대동한 러시아나 중국의 군용기가 영공을 침범할 경우 전투기끼리 공중전을 펼치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러시아가 붙일 수 있는 호위 전투기는 Su-37 전투기로 F-16 전투기와는 체급부터 다른 기종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F-15K 전투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도다.
◇F-15, 조기경보기 추가 도입 검토 필요=러시아의 영공 침범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F-15 전투기의 추가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온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곧 단종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아직도 해외발주가 이어지는 F-15 전투기는 새로운 개량형을 개발, 미 공군과 동맹국을 노크하고 있다. 신형 위성배열 레이더를 장착하고 무장도 크게 늘린 개량형에 일본이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F-15C 전투기를 면허 생산한 F-15J를 보유한 일본이 신형에 준하는 개량을 실시할 경우 F-15 기종에 있어서의 한국의 대일본 우위도 사라진다.
하지만 공군이 전투기를 추가로 들여올 여력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F-35 전투기 도입과 KF-X 개발에 집중된 예산에서 급유기와 조기경보기를 가까스로 들여온 처지라서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전개할 연합비행의 형태와 내용이 심각해질 경우 추가 도입 논의도 자연스레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전투기보다 조기경보기 등 지원기가 더 절실하다는 요구도 있다. 공군의 한 관계자는 “현재 4대가 도입된 조기경보기를 2대 더 들여오는 방안이 논의되지만 4대를 더 도입해 북한과 중국·러시아를 세 방면에서 감시하거나 북부와 남부로 구분해 감시하는 시스템을 갖출 경우 가용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치 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개발과 해외 직도입을 오락가락하며 사업이 늘어진 장거리 레이더도 시급하게 확보해야 할 감시자산으로 손꼽힌다.
KF-16 전투기의 짧은 행동반경을 넓혀줄 수 있는 공중급유기 추가 도입에 대해서는 공군 내부에서도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이제 막 실전배치 단계를 밟고 있어 한반도에서의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데다 긴급발진 상황에서 급유기는 전력 배치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 견해도 있다. 무장 상태의 KF-16 전투기가 독도 상공에서 충분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급유를 받으면 다시 투입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기름을 가득 채운 공중급유기가 전투기 공역의 바깥에서 대기하며 급유를 실시하는 운용교리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