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제조업의 추락이 끝이 안 보인다. 수출 부진과 기업의 해외 이전으로 국내 설비투자가 줄면서 제조업 생산능력이 거듭 쪼그라들었다. 그동안 생산과 투자 부진에도 내수를 떠받쳤던 소비와 서비스업 생산마저 감소세로 돌아서 시름을 깊게 만들고 있다. 이마저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아직 반영되지 않은 경기지표다. 반도체 3대 품목에 이어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해 원자재 수입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경제활동 자체에 막대한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여건의 악화로 지표가 줄줄이 부진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조업은 물론 한국 경제 전반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6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6월 제조업 생산능력은 전년 동월 대비 1.6% 감소했다. 지난 1971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감소 폭이 가장 크다.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제조업 생산능력이 늘어났던 적은 2018년 2월(0.1%), 7월(0.1%) 두 번에 불과하다. 폭도 미미했다. 분기별로 봐도 지난해 1·4분기 0.2% 제조업 생산능력이 줄어든 후 올 2·4분기 1.2% 감소하기까지 6분기 연속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분기별 제조업 생산능력 감소가 이처럼 장기간 이어진 것 역시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감소 폭도 크고, 그 기간도 길지만 생산능력 절대 수준 자체(101.3·2015년=100)도 2016년 4월(101.1) 이후 3년 2개월 만에 가장 낮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1.9%로 직전월과 같았다.
제조업 생산능력은 정상적인 조업환경 속에서의 최대 생산 가능량을 의미한다. 생산능력이 떨어졌다는 것은 생산설비의 효율성이 떨어졌거나 증설·개보수를 위한 설비투자가 그만큼 늘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보경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조선업의 경우 과거에 생산능력이 호조를 보였다가 지금은 감소하고 있다”면서 “자동차 업종도 생산라인 변경 등에 따라 단가 차이가 발생하면서 생산능력 변화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3대 경기지표인 생산·소비·투자를 보면 생산과 소비는 4개월 만에 동반 하락했고, 투자는 전월 대비 늘었다. 지난달 전(全) 산업생산은 직전월보다 0.7% 감소하며 2개월 연속 줄었다. 소비도 1.6% 줄었는데, 이는 지난해 9월 (-1.7%) 이후 가장 큰 폭이다. 승용차 등 내구재 소비가 3.9% 크게 줄었고 준내구재와 음식료품 같은 비내구재 소비도 각각 2.0%와 0.3% 감소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수출과 투자 부진에 이어 내수까지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은 한국 경제 전반으로 부진한 흐름이 점점 퍼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나마 설비투자가 0.4% 늘었지만 5월 감소 폭이 7.1%로 워낙 컸던 데 따른 기저효과로 풀이된다. 건설사가 실제로 시공한 실적을 의미하는 건설기성은 전월 대비 0.4% 줄었고 건설수주 역시 7.5% 감소하는 등 건설업 부진도 계속됐다.
현재와 미래의 경기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경기동행지수와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3개월 만에 동반 하락했다. 5월 동행지수가 0.2포인트 깜짝 반등하기는 했지만 이내 하락 전환했다. 6월 동행지수는 0.1포인트, 선행지수는 0.2포인트씩 전월 대비 빠졌다. 절대 수치 자체도 선행지수는 97.9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산업생산과 소비가 큰 폭으로 감소한 게 동행·선행지수 동반 하락에 영향을 줬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문제는 경기 전망이 더 어둡다는 점이다. 대내적으로는 경기 부진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 대외적으로는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일본 수출규제 조치 등 말 그대로 내우외환 상황이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 수치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따른 영향이 반영되지 않은 결과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가 현실화된다면 국내 제조업 생산라인이 받을 타격은 마비 수준에 가까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현재 쌓여 있는 재고 수준 등을 고려하면 당장 타격이 가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금처럼 경기 흐름이 좋지 않아 재고율이 높은 상황에서는 곧장 생산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6월 출하 대비 재고 비율은 115.3%로 직전 5월 118.1%보다 2.8%포인트 하락했지만 올 1월 111.5%보다 3.8%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세종=한재영·정순구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