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믿을 건 안전자산"...달러예금 잔액 한달새 2조 급증

韓日 경제전쟁 등 불확실성 커져

환율 급등속 투자자 대거 몰려

金은 1g당 5만5,410원 최고가 경신

1%대 예적금에도 자금유입 꾸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와 미중 무역분쟁 격화로 경기 먹구름이 짙어지면서 자산가들의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가운데서도 국내 시중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이 한 달 새 2조원 가까이 늘었고 연 수익률이 1%에도 못 미치는 정기예금에도 자금 유입이 꾸준하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KEB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달러예금 총잔액은 지난 7월 말 기준 390억6,677만달러로 전월 대비 4.1%(15억4,704만달러) 증가했다. 한 달간 2조원 가까운 자금이 유입된 셈이다.

달러예금 잔액은 올해 1월 400억달러를 넘어섰다가 환율 상승에 따른 환차익 수요가 몰리며 4월까지 334억달러로 감소한 뒤 5월 들어 석 달 연속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200원 선을 돌파할 정도로 가격 부담이 커졌지만 환차익 실현보다는 안전자산 비중 확대 차원의 달러예금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김현섭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프라이빗뱅커(PB)팀장은 “원·달러 환율이 1,170~1,180원일 때만 해도 환율 하락을 우려해 달러예금 투자를 주저한 고객들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이후에도 환율이 계속 오르며 상승세를 보인데다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로 경기 둔화 우려가 높아지면서 안전자산인 달러예금 비중을 높여가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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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도 여전히 품귀현상을 빚으며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2일 KRX금시장의 1g당 금 가격은 5만5,410원으로 2014년 초 시장 개설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다. 거래량도 149㎏으로 최대 거래량을 갈아치웠다. 앞서 역대 최고가는 지난해 7월31일 5만4,650원, 최대 거래량은 2017년 12월20일 141.2㎏이었다. 일부 은행에서는 나날이 급증하는 금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인기가 많은 10g·100g 단위의 골드바가 동나기도 했다.

예·적금에도 돈이 몰리고 있다.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7월 말 총 640조3,823억원으로 전월 대비 8조6,377억원(1.37%) 늘었다. 이는 올해 2월 증가분인 9조8,65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적금 또한 5대 은행의 잔액이 7월 말 총 37조9,261억원으로 전월에 비해 4,568억원(1.22%) 증가했다. 6월 적금 증가 규모인 891억원의 5배 수준에 달한다. 올 들어 시중은행들이 예·적금 금리를 꾸준히 낮췄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 부동자금이 연 1~2% 수준의 낮은 금리에도 예·적금으로 몰린 것이다.

이처럼 각종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쏠리는 것은 경기 둔화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최근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와 전망’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수출규제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0.27∼0.44%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지난달 초 일본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품목의 수출규제 조치만 반영한 것으로 한국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가져올 악영향은 고려되지 않았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부터 3,000억달러어치 중국산 제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포문을 연 만큼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돼 경기 불확실성이 커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 팀장은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 조치로 경기 불확실성이 더욱 커져 올 하반기에는 방어적인 투자전략을 가져갈 필요가 있다”면서 “투자자산의 최소 10% 이상을 달러예금 등 안전자산으로 분산할 것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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