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태국 방콕 회담 이후 약 3주 만인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회동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냉랭한 분위기로 일관했다.
이날 예정보다 일찍 나와 일본 취재진과 담소를 나누던 고노 외무상은 이후 모습을 드러낸 강 장관과 기념 촬영을 한 뒤 오후 2시(현지시간) 회담장으로 들어갔다. 사진기자들 앞에서 악수하는 두 장관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비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경직된 모습은 이날 회담에 별다른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사전 예고했다.
35분 뒤 굳게 닫힌 문에서 나온 두 장관은 굳은 표정으로 황급히 회의장을 떠났다. “분위기가 어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강 장관은 “드릴 말씀이 없다”며 발길을 재촉했다. 뒤이어 나온 고노 외무상의 입도 굳게 닫혀 있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두 장관이 악수 없이 헤어졌다”고 전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미 전날부터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강 장관은 이날 3국 외교장관회의를 마친 후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에서도 “18일은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처음 주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10주기”라며 “김 대통령이 하늘에서 흡족한 마음과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으로 논의를 지켜보시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전날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양자 회담하는 중에도 “우리는 계속 대화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일본 측에서 잘 응하고 있지 않아 조금 어려운 상황”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고노 외무상도 강 장관과의 양자회담을 앞두고 기분을 묻는 일본 기자들의 질문에 “피곤하다”는 짧은 대답만을 했다. 한국과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중국의 왕 부장까지 은근히 한국 편을 드는 곤혹스러움이 묻어난 반응이었다. 하필 전날 일본 시사주간지 아에라가 지난달 초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조치를 내릴 당시 아베 신조 총리가 경제산업성의 의견만 듣고 외무성을 배제시켰다고 보도하면서 ‘왕따’ 논란까지 겹쳐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으로 보인다.
강 장관과 고노 외무상은 전날에도 오후부터 만나 만찬까지 같이했지만 실제 대화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왕 부장은 한중일 외교장관 기념 촬영에서 한일 장관의 손을 확 잡아끄는 모습을 보이며 서로 가깝게 해주려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지만 정작 두 사람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