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찬원전론자도 탈원전론자도 아니고 유틸리티 산업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다. 한국의 전력산업을 언급하기 전에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한 반대가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지, 정부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익히 알고 있기에 먼저 밝혀 두는 바이다.
한국전력은 지난 2016년 12월 누진단계를 축소하면서 주택용 전기요금을 사실상 인하했다. 2018년 여름 한시적 할인이라는 단서를 달고 누진단계를 축소했고 올여름이 시작되기 직전 이를 상시화하는 요금제 변경을 결정했다. 여기에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전력수급관리이다. 전력수요는 하루를 놓고 보면 한낮에 높고 한밤에 낮다. 연중으로 보면 7·8월과 1·2월이 피크다. 정전을 피하기 위해 피크 수요보다 더 많은 전력을 공급하다 보니 전력은 기본적으로 공급과잉인데 연중으로 볼 때 피크 수요 패턴에 따라 공급과잉 정도가 심해진다. 비효율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피크 수요를 낮춰 전력수요 형태를 완만하게 유도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낮 시간에 피크 수요를 자극하는 누진요금 완화를 3년 사이 두 차례나 단행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 새로운 전력 생태계 육성에 역행한다. 정부는 전력신산업 육성을 말해왔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업체가 도소매시장에 진입해 경쟁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가격체계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스마트그리드 진흥책을 발표한 게 10년이 됐는데도 아직 주택용 시간대별 차등요금도 적용을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수요가 몰리는 한낮 시간의 실질요금을 낮추는 누진제 완화 결정이 이뤄졌다.
셋째, 전기요금 운영원칙 또한 의문이다. 정부의 누진제 상시적 할인 결정 이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한전 이사회로 향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회사가 적자인데 요금인하를 의결한다면 배임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탓이다. 사실 이런 논란은 더 큰 원칙인 전기요금 결정에 따를 수 있다. 전기요금 결정에는 분명한 원칙이 존재한다. 한국전력이 매년 총괄원가를 산정하고 요금조정이 필요한 경우 전기요금 개정안을 이사회 의결 후 산업통상자원부에 인가를 신청하는 절차이다. 전기요금은 2007년 1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아홉 차례 인상되고 이후 변경이 없다. 두 차례 누진제 완화로 간접적인 요금인하가 있었을 뿐이다. 2018년과 2019년은 요금인상 요인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설명이 없다. 한전 홈페이지에 공개되는 전기요금 원가정보는 현재 2017년 ‘예산’상의 전기요금 원가정보가 최신이다.
영국 에너지그룹 BP사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석탄 소비량은 전년 대비 3.5% 감소했는데 한국은 반대로 2.4% 증가했다. 글로벌 정책 공조 과제인 탄소감축에서 거꾸로 간 데이터다. 한국의 석탄발전용량은 2014년 말 27GW(기가와트)에서 2018년 8월 37GW까지 늘었는데 오는 2021~2023년 준공 목표로 5.2GW가 건설 중이고 2.1GW가 건설 예정이다. 현 정부는 집권 전 공약과 달리 2017년 말 제8차 장기전력수급계획에 다수의 민자 석탄발전소 건설계획을 포함시켰다. 한국전력의 석탄발전소 이용률은 2010년대 초 90%를 넘기다가 2018년 74.3%, 2019년 2·4분기 57.5%까지 떨어졌다. 정부가 유연탄 개별소비세 세수를 아쉽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석탄 소비를 줄여야 한다. 그런데 석탄발전소를 오히려 더 짓고 있으니 비효율이 가중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공을 들이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격이 2018년 5월 11만원에서 2019년 7월 말 6만원선이 붕괴됐다. 정부는 연말에 제9차 장기전력수급계획을 발표해야 한다. 환경친화적 발전 믹스 구축을 정책의 최우선과제로 고집한다면 전력수급 비효율과 한국전력의 수지악화가 가중될 것이 유력하다. 후대를 위해 피크 수요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발전소를 덜 짓는 쪽에 지혜를 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전력 주식의 PBR(순자산 대비 주가의 배율)은 0.25배에 불과하다. 청산가치도 한참 하회하는 수준으로 투자자들이 회사에 가치를 부여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는 의미다. 이유는 흔들리는 전기요금 운영원칙에 대한 실망 때문일 것이다. 유틸리티 업종이 안정적인 실적을 바탕으로 변동성을 줄여주는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나름의 역할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해당 없음이다. 자금이 필요하면 채권을 발행하면 될 일이니 대주주 정부 입장에서 주가하락이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2000년대 초 PBR이 0.6배에 불과하다고 문제가 돼 수포로 돌아갔던 전력산업 민영화를 당장은 재추진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 공기업이 소위 한국 주식시장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사실은 가볍지 않을 수 있다. 정책 당국의 변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