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격 경질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 외교가에서 ‘슈퍼 매파’로 불리는 인물이다. 중동·남미는 물론 북한 문제에 있어서도 강경한 원칙론을 고수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유연한 자세를 취하려고 할 때마다 결정적인 방향타 역할을 해왔다.
이에 볼턴 보좌관은 북한에 있어 늘 ‘불쾌한 존재’였다. 볼턴 보좌관은 북한 체제는 물론 김정일·김정은 등 북한의 ‘최고 존엄’에 대한 비난에도 거침이 없었다. 북한은 그를 ‘인간쓰레기(human scum)’ ‘흡혈귀(bloodsucker)’ 등으로 맹비난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1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볼턴 보좌관이 ‘리비아식 핵 폐기’를 거론하자 북한은 ‘잊혀진 인물’ 김계관 외무성 부상까지 동원해 회담 취소 으름장을 놨고 트럼프 대통령도 전격 취소라는 맞불을 놨다가 번복하는 등 북미관계가 요동을 쳤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정상회담에서도 볼턴 보좌관의 ‘노란 봉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봉투에는 일괄타결과 관련된 대북 요구사항이 들어 있었고 이에 결국 하노이회담이 결렬됐던 것으로 이후 알려졌다.
北, 단계적비핵화·제재완화 요구 들어줄 수 도
박원곤 한동대 지역관계학과 교수는 “볼턴 보좌관 경질 소식을 제일 반길 곳은 북한”이라며 “북한이 좋아한다는 것은 결국 비핵화 측면에서 우리에게, 특히 안보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이제 볼턴 보좌관이 대북 라인에서 빠지면서 북미관계가 정치적 이해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둘 다 정치인”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이 재선 캠페인 과정에서 정치적 계산으로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와 제재 완화 요구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는 의미다. 9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이달 하순 북미 실무협상 복귀를 예고한 북한 역시 이 같은 판세를 읽고 대화 판으로 다시 나와 미국의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흔들려 들 수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도 향후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운명 공동체인 폼페이오 장관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신 센터장은 “볼턴 보좌관 후임으로 더 강경파가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며 “트럼프 행정부 1기가 거의 끝나가는 상황에서 명망 있는 인물이 선뜻 맡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 센터장은 “결국 우리 입장에서 걱정스러운 면은 완전한 북핵 폐기가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 센터장의 지적대로 이미 트럼프 행정부는 외교·안보 라인에서 심각한 인물난을 겪고 있다.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 댄 코츠 전 국가정보국장,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등이 줄줄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곁을 떠났다.
외교 원칙 중시하던 참모들 트럼프 곁 떠나
완전한 비핵화의 길이 험준해지는 것은 물론 ‘매파’들이 우려하는 주한미군 주둔 문제에서도 정치적 셈법이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매티스 전 장관의 경우 최근 발간한 회고록에서 한국을 예로 들며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미군 국외 주둔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는 “동맹과 신의를 지키자는 나의 전략적 조언이 더 이상 울림을 갖지 못했을 때 사임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고 심경을 밝혔다.
한편 볼턴 보좌관은 워싱턴포스트(WP)에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나는 적절한 때에 발언권을 가질 것”이라며 “나의 유일한 염려는 미국의 국가 안보”라고 밝혔다. 또 공화당 소속의 밋 롬니 상원의원은 CNN에 “미국과 백악관에 큰 손실”이라며 “볼턴 보좌관은 다른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백악관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내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