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일제강점기는 디아스포라의 역사였다"

"조선인 10%이상 굶주림 못견뎌

주변국으로 흩어져 떠돌이 생활"

'반일 종족주의' 허상 정면비판한

'평화를 향한...' 등 저서 속속 출간

1920~1930년대 일제가 조선을 자국의 식량공급기지로 만들기 위해 추진한 산미증식계획에 따라 우리 농민들이 한 항구에서 일본으로 옮겨질 쌀가마니를 쌓고 있다./사진=연합뉴스1920~1930년대 일제가 조선을 자국의 식량공급기지로 만들기 위해 추진한 산미증식계획에 따라 우리 농민들이 한 항구에서 일본으로 옮겨질 쌀가마니를 쌓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조선에 근대적 제도가 이식되고 농업 생산이 늘어났으며 1930년대에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경제 총량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농민이나 자본가, 사회주의자나 미국, 유학파, 문인이나 경제학자 등 계층과 학문 기반의 차이를 떠나 당대의 조선인들이 식민지 경제를 잘산다고 인식한 경우는 없었다.”(신간 ‘평화를 향한 근대주의 해체’의 일부분)

최근 출간된 ‘반일 종족주의’가 서점가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를 정면으로 비판한 책들이 잇따르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발전과 근대화 토대를 닦았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실체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단순한 비판을 넘어서 ‘반일 종족주의’가 주장하는 논리의 허점과 이를 통해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는 기회가 마련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최근 동북아역사재단은 일본 식민지가 한국 경제 발전의 근간이 됐다는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을 정면으로 반박한 교양서 ‘평화를 향한 근대주의 해체’를 내놨다. 책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10% 이상이 굶주림에 견디지 못해 주변국으로 이주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 현상을 소개하며 양적성장론을 기반으로 한 식민지근대화론과 이를 추종하는 세력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식민지근대화론은 ‘국내총생산(GDP) 수치가 증가하면 모두가 잘산다’고 생각하는 양적성장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이 소속된 낙성대경제연구소는 ‘한국의 근대적 성장의 역사는 1910년부터였다’고 주장한다.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과 1930년대 일본질소비료(주) 같은 독점자본의 유입에 기초해 조선공업화정책이 해방 후 한국경제의 기틀이 됐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책은 해방 직후인 1946년 남한의 총소득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직후인 1911년보다 낮은 수준으로 급락했고, 조선인의 생활 수준도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0~1930년대 일본의 공업화 정책에도 한반도 인구의 10% 이상이 일본이나 중국, 소련 등 국외로 이주하는 디아스포라의 비극이 연출됐다. 도시로 이주한 농민들은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아야 했고,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인들은 명목상 모집, 알선, 징용으로 둔갑한 강제동원까지 겪어야 했다.

관련기사



근현대사 연구자인 이 책의 저자 정태헌 고려대학교 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이 주장하는 ‘식민지배가 없었다면 시장경제가 형성되지 못하고 근대 교육이 보급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가정은 매우 정치적이며 취약한 논리에 불과하다”며 “식민지근대화론의 통계 분석이나 방법론은 경제학계에서도 인정받고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책은 식민지근대화론의 배경을 1980년 중후반부터 한국을 비롯한 몇몇 동아시아 국가들의 급속한 경제 성장에서 찾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이들 국가의 경제성장을 가져오는 밑거름이 됐다고 믿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런 논리체계는 냉전의 종식과 함께 일본 내에서 급속도로 확산했고, 국내 학계나 정계, 경제계 등에서 집단 수용하기도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후 국내에서는 1990년대 민주화 과정에 대한 반작용으로 극우화 경향이 심화하면서 이런 색채가 더욱 짙어졌다고 저자는 진단했다.

정 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은 해방 이후 근대주의에서 발전주의, 신자유주의로 얼굴을 바꾸면서 오늘날까지 한국 근현대사 인식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며 “유독 한국 사회에서는 보수주의가 ‘반공’과 결합돼 맹목적 근대주의로 나타나는 경향이 매우 짙다. 한국 사회에 깊이 배어 있는 근대주의야말로 식민지근대화론과 같이 역사인식이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대두되고 수용되는 토양이었다”고 전했다.

앞서 일본 학자인 도리우미 유타카(鳥海豊) 한국역사연구소 상임연구원이 출간한 ‘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도 일제강점기 토목업을 둘러싼 식민지근대화론을 실증적으로 비판해 주목받았다. 도리우미 연구원은 조선총독부 통계 자료 등을 통해 ‘조선을 위한다’는 대의명분 이래 투자된 자금의 상당 부분이 일본인의 손에 들어가 조선인들은 가난에 허덕였다며 식민지근대화론의 허상을 꼬집었다. 그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일본에 유리한 자료를 많이 남기면서 한국 학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며 “이는 현재 식민지근대화론이 강세를 이루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최성욱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