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7일(현지시간) 영국의 국립미술관 격인 런던 테이트모던이 개막하는 대규모 ‘백남준’ 전시를 앞두고 유럽이 ‘먼저’ 달아올랐다.
지난 3일 개막해 6일까지 런던 리젠트 공원에서 열린 ‘프리즈 마스터즈(Frieze Masters)’에 갤러리현대가 선보인 백남준의 대표작들 때문이다. ‘프리즈’는 스위스 바젤, 프랑스 피악 등과 더불어 세계 3대 아트페어로 통하는 행사다. ‘프리즈 마스터즈’는 이름대로 20세기 거장급 작가들을 엄선해 전시하는 자리다.
갤러리현대는 부스 전체를 백남준의 개인전 형식으로 꾸며 백남준의 TV로봇 초기작인 1986년작 ‘로봇가족:할아버지’와 ‘로봇가족:할머니’를 필두로 지난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의 대표작가로 참여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할 당시 선보인 ‘스키타이 왕 단군’ 등 대표작을 대거 출품했다. 한국 태생의 백남준이 일본 유학을 거쳐 독일에서 데뷔하고 말년 40년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등 ‘글로벌 아티스트’로 명성이 높지만 그의 타계 이후 유럽에서는 딱히 대규모라 할 만한 회고전이 열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곧 있을 테이트모던의 전시가 관심을 끄는 가운데, 프리즈 마스터즈의 작품들이 ‘예고편’처럼 주목을 끌었다.
세계적인 미술전문 온라인매체 ‘아트시(Artsy)’는 세계 163개 화랑이 참여한 ‘프리즈 런던’과 ‘프리즈 마스터즈’를 통틀어 최고의 전시 15개를 선정하며 그 중 하나로 갤러리현대의 백남준 전시를 꼽았다. 엄선된 대표작들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했다.
백남준은 1988년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한국의 역사적 인물로 TV로봇을 제작하기로 결심했고 당시 ‘세종대왕’ ‘선덕여왕’ 등을 선보였다. 이후에는 전시가 열리는 지역마다 관련있는 역사적 인물로 작품 소재를 넓혔다. 자신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인물도 TV로봇으로 형상화 했다. 1990년작 ‘존 케이지’와 ‘샬롯 무어만’이다. 존 케이지는 백남준이 ‘스승’이라 부른 현대음악가인데, 웅장한 몸체의 TV모니터 위에 케이지를 상징하는 피아노 부속품들을 붙였고 작품 앞쪽에는 한자로 ‘운명적 상봉’이라 적은 작품이다.
첼리스트인 샬롯 무어만은 백남준과의 나체 퍼포먼스 때문에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던 ‘백남준의 뮤즈’이다. 작품 ‘샬롯 무어만’은 비스듬한 자세로 현악기를 든 모습이 영락없는 무어만을 은유한다. 원래 이 작품은 백남준의 미국 전속화랑 중 하나인 칼 솔웨이 갤러리의 칼 솔웨이 사장이 개인 소장용으로 가져간 작품이었지만 작가가 “내게 아주 중요한 작업이니 꼭 한국으로 가도록 하자”고 강하게 주장했고 꼬박 사흘을 계속 설득한 끝에 한국 전시에 선보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로봇 가족’ 연작은 한국 특유의 대가족 개념을 백남준식 철학적·미학적으로 해석한 작품으로 지난 2000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에도 출품됐다.
1991년 유럽 순회전과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에 선보인 백남준의 대표작 ‘나의 파우스트’ 연작 13점 중에서 가장 상징성 큰 작품인 ‘예술’도 눈길을 끌었다. 이 외에도 ‘우주 밖으로 & 우주 안으로’와 같은 입체 작품, 샬롯 무어만과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피터 무어의 사진 등도 함께 전시됐다.
출품작들은 일부 개인소장가의 ‘비매품’을 제외하면 18만 달러(약 2억1,500만원)부터 최고 150만 달러(18억원) 수준이다. 20세기 거장의 작품 치고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편이다. 갤러리현대 측 현지 관계자는 “개인 컬렉터는 물론 미술관 관계자들이 작품 구입을 문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테이트모던이 개최하는 백남준 전시는 내년 2월까지 열린 후 공동기획한 미국 샌프란시스코미술관으로 옮겨가고, 이어 네덜란드·싱가포르 순회전으로 계속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