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분열의 그림이 국가를 쇠(衰)하게 한다

신경립 문화레저부 부장

曺장관 임명 찬반여론 시작으로

오래 곪아왔던 이념·가치관 대립

서초동 대 광화문으로 민심 갈려

靑, 침묵만 지키고 있을때 아냐

신경립부장



콕, 콕, 콕, 콕, 콕…. 눈앞 가득하게 무수히 찍혀 있는 형형색색의 점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질서도, 의미도 없이 그저 빼곡하게 찍혀 있는 무수한 붓자국과 현란한 색채에 압도당해서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하지만 한 발짝, 두 발짝 뒤로 물러나다 보면 어느 순간 어지럽게 찍혀 있던 무의미한 점들은 아름다운 장면의 형상을 띠기 시작한다. 파리 시민들이 햇살이 가득 비치는 센 강가에서 여유로운 휴일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다. 계급도, 연령대도 다양한 수십명의 시민들은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이루며 커다란 화폭을 장식하고 있다. 19세기 대표적인 점묘파 화가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다.


미술 교과서에서 처음 접했던 이 그림을 오래전 외국의 한 미술관에서 직접 봤을 때 그림의 아름다움 자체보다는 작지 않은 크기의 캔버스에 수백만개의 점을 찍어낸 작가의 끈기와 무수한 작은 점들만으로 그림을 완성해 내는 기법에 경이로움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지난 주말 서초동을, 그리고 그보다 이틀 앞서 광화문을 가득 메운 수많은 인파를 보며 아이러니하게도 쇠라의 작품을 바로 눈앞에서 바라보며 느꼈던 현기증을 느꼈다. 차량통행을 막은 8~10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차이점은 가까이에서 볼수록 무질서하지만 멀찌감치서는 완벽한 그림으로 재탄생하는 쇠라의 작품과 달리, 서초동과 광화문의 인파는 멀리서 바라볼수록 어지러움과 혼란스러움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시위 현장에서는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며 거대한 흐름을 이룬 듯 보인다. 같은 신념으로 같은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집결해 있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 발 떨어져 보면 보수와 진보, 나아가 진보와 진보 사이에서도 극명하게 갈리고 무질서하게 흩어져 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국 사회를 외부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AP통신은 최근 벌어진 두 건의 대규모 시위에 대해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거리를 점령한 시위와 그 반대편 시위는 조국 장관을 둘러싼 수개월간의 서사극이 이미 정치적으로나 세대 간에 깊은 분열을 겪고 있는 나라를 더욱 양극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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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과 무질서의 원인은 자명하다. 자녀 입시부터 사모펀드 투자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의혹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이 임명되면서 들끓기 시작한 찬반여론이 결국 거리에서 격돌한 것이다. 한쪽에서는 조 장관 파면을 요구하며 인사를 강행한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고, 또 한쪽에서는 조 장관 수호와 검찰개혁을 내세우며 세(勢) 대결을 벌이는 형국이다. 정치권은 한술 더 떠 상대 진영에 대한 비난과 막말 공격으로 갈라진 여론을 더욱 자극하고 시위를 선동하고 파편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국민여론과 정치권이 조 장관을 사이에 두고 비이성적으로 분열하는 동안 국정과 민생·경제는 내팽개쳐졌다. 국민들은 이미 피로감에 젖어 있지만, 사태가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와 여당은 검찰수사 등 사법절차에 따라 조 장관의 법적 책임 여부가 가려질 것이라고 하지만, 과연 법적 판결을 계기로 갈라진 여론이 봉합될까. 조 장관과 그의 가족을 둘러싼 논란은 어느 특정인이 위법행위를 저질렀느냐는 범주를 벗어나, 우리 사회에서 오래 곪아온 이념과 가치관의 대립, 상식의 분열로 비화하고 있는데 말이다.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정책 비서관을 지냈던 저명한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는 번영하던 국가가 쇠퇴하는 요인이 국민들 사이의 분열이라고 봤다. 분열은 사회 통합을 가로막고 경제발전을 저해하며 기반이 탄탄했던 국가들을 붕괴로 밀어 넣는다는 것이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린 국론의 균열상을 바라보면 우리 사회가 몰락의 기로에 서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조국 정국이 초래한 편협한 편 가르기와 세(勢)대결이 더 지속된다면 우리 사회가 그려낼 수 있는 형상은 암울한 형상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이미 무서운 속도로 자라는 분열의 싹을 자르는 것은 결국 지도자의 몫이다. 그런데 정작 분열의 씨앗을 뿌린 청와대는 언제까지 침묵만 지키고 있을 것인가.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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