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오후5시께 모친인 강한옥 여사가 입원해 있는 부산 메리놀병원에 도착했다. 강 여사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 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한 후 곧바로 부산으로 발길을 튼 것이다.
강 여사는 이날 오후7시6분 부산의 한 병원에서 문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생애 마지막 순간 그토록 사랑하던 장남과 2시간가량 마주했다. 7시가 좀 지나 현장에서는 ‘강 여사가 별세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7시26분쯤 문 대통령이 병원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검은 양복에 노타이 차림이었고 내내 침통한 표정이었다.
강 여사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최대한 간소하게 치러질 예정이라고 청와대가 이날 밝혔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현지에서 긴급한 상황이라든지 보고가 필요할 경우도 있어서, 그런 상황에 대비해 공간 확보라든지 이런 것들은 다 조치를 취해놓은 상태”라면서 “청와대는 일단 비서실장 중심으로 평상시와 똑같이 근무를 서게 되고 청와대 직원들이 함께 단체로 같이 조문을 간다든지 이런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례를 최대한 조용하게 치르는 것은 문 대통령의 의지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고 대변인은 “(문 대통령께서)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하겠다는 뜻을 전하셨다”며 “애도와 추모의 뜻은 마음으로 전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강 여사의 빈소는 부산 남천성당에 마련됐다. 장례미사는 31일 오전10시30분이며 장지는 경남 양산에 위치한 하늘공원이다. 이날 남천성당 앞에는 취재 기자들이 모여들었으나 성당 안으로의 진입은 통제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근조기가 도착했으나 이 역시 반려됐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가족장으로 치르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셨다”며 “본인이 공식적으로 휴가를 얻으시는 것 외에는 (다른 절차는) 안 하시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청와대 비서실 역시 이날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최소한의 인력만 부산으로 향했다. 주영훈 경호처장, 이정도 총무비서관, 신지연 제1부속비서관, 최상영 제2부속비서관 등이 문 대통령을 수행했고 문 대통령의 측근인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남천성당에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강 여사는 이미 수일 전부터 상당히 위독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놀병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강 여사는 2주 전부터는 병세가 악화돼 중환자실에 입원했으며 이날 오전에는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혈압을 높이는 약을 투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11시45분께는 문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가 병원에 도착했으며 이후 오후2시45분께 문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송기인 신부가 병원을 찾았다.
국내 정치사에서 현직 대통령의 모친이 별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친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던 만큼 문 대통령의 상심도 클 듯하다. 강 여사는 홀로 걷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약해지는 와중에도 부산 영도구의 한 성당에서 열리는 문 대통령을 위한 미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했을 만큼 아들에 대한 애정이 극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 역시 본인 때문에 강 여사가 불편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왔다.
강 여사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정치권은 여야를 떠나 일제히 애도의 뜻을 표하고 고인을 추모했다. 강 여사의 별세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과 사퇴, 사법제도 및 선거제도 개편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과정에서 극한 대립 양상을 보인 여야도 당분간은 냉각기를 가질 것을 관측된다.
‘정치적 상주’인 민주당은 의원들에게 대통령의 입장을 전달하며 차분한 모습으로 애도를 나타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모친상에 일체의 조문이나 조화를 정중히 사양하고 조의의 마음만 받겠다는 뜻을 전해왔다”며 “의원들은 이런 대통령의 뜻을 따라주기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문상 인원이나 시간 등은 청와대와의 협의를 거쳐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한국당 역시 청와대와의 논의를 통해 황교안 대표 등의 조문 여부와 시점 등을 결정할 계획이다. 김명연 한국당 수석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삼가 조의를 표한다”며 “큰 슬픔을 마주한 문 대통령과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실향민으로, 질곡의 역사 속에서도 어머니의 역할을 부족함 없이 다해온 강 여사는 대통령의 모친이기 이전에, 이 시대의 평범하지만 위대한 어머니의 표상이었다”며 “이제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부디 하늘에서만큼은 고향인 흥남의 땅을 마음껏 밟으며, 만나지 못한 가족들과 행복한 재회를 하실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강 여사의 유족은 문 대통령과 더불어 누나와 두 명의 여동생, 그리고 남동생이 있다. 문 대통령의 누나인 재월씨와 여동생인 재성씨는 주부이고 남동생인 원익씨는 원양어선 선장이다. 막냇동생인 재실씨가 부산에서 강 여사를 모시며 함께 살아왔다. /부산=양지윤기자 윤홍우·임지훈기자 seoulbir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