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그림자 규제'에 사법 리스크까지…'예비범법자' 몰린 스타트업

[먹통 정부·국회에…사업 접는 스타트업]

신산업 하려면 기존산업·현행법과 충돌 불가피한데

정부, 유권해석 제대로 안하고 정치권은 입법 무관심

지난달 8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타다 본사 앞에서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원들이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 확대운영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스타트업들은 기존에 없던 사업을 하는 만큼 현행법과의 충돌이 불가피하지만 정부 주무부처는 기존 산업의 반발 여론을 의식해 적극적인 법 해석을 외면하고 있고, 입법으로 보완해야 할 정치권은 내년 총선과 자신들의 이권이 달린 선거법 등에만 매몰돼 정작 현안 경제법안에는 무심하기 짝이 없다. 이렇다 보니 현장의 스타트업들은 ‘하면 된다’는 의지를 키우기보다 ‘해도 안 되는구나’라는 좌절감부터 맛봐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한 플랫폼 스타트업 대표는 1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부 주무부처가 (스타트업을 위해) 적극적으로 유권해석을 하지 않고 (택시 업계 등) 기존 산업의 반발 여론만 의식하다 보니 그 피해가 스타트업에 돌아오고 있다”며 “‘타다’처럼 자금 여력이 풍부한 스타트업은 법정공방을 불사하겠지만 믿을 구석이 없는 스타트업들은 폐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스타트업 육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법 해석과 새로운 ‘그림자 규제’ 등으로 스타트업들이 의욕을 잃어가고 있다. 학원 통학차량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버스랩’이 차종규제에 막혀 진전을 보이지 못한 것은 큰 규제를 없애도 시행규칙 등과 같은 작은 규제들이 또 튀어나와 방해하고 있어서다. 학원 통학차량은 무조건 25인승으로 하라는 시행규칙 때문에 학생 수가 없는 도서 산간에서도 소형 밴이 아닌 25인승 대형 버스를 운행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효승 리버스랩 대표는 “학원버스 시장은 국토교통부와 행정안전부·경찰청 등 10여곳이 유관부처지만 어느 곳도 본격적으로 관리하지 않아 합법적이지 않게 움직인다”며 “타다 사례를 보니 (사법처리 대상이라는) 불똥이 언제 튈지 몰라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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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거리를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 차량과 택시가 함께 달리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이재웅 쏘카 대표와 박재욱 VCNC 대표를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연합뉴스


소관부처의 중재 이후에도 사업을 접어야 했던 스타트업도 있다. 지난 2016년 심야시간에 남는 전세버스에 승객을 태우는 서비스를 제공하던 ‘콜버스랩’은 면허가 없는 사업자가 불법영업을 하고 있다는 택시조합의 반발에 부딪혔다가 국토부의 중재로 심야시간에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심야버스 운행에 필요한 차종을 1대에 6,000만원이나 하는 ‘쏠라티’급으로 규제하면서 가격 부담이 적은 스타렉스나 카니발로 변경하려던 콜버스랩은 정식 서비스를 해보지도 못하고 수억원의 투자금만 날렸다. 지금은 사업을 축소해 전세버스 대절 가격비교 애플리케이션만 운영하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여론 때문에 규제를 풀겠다고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규제로 애를 먹인다”며 “스타트업에 법 해석 리스크 등을 전가하면 제2벤처 붐은 수사에 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이대로 가면 제2의 타다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새로운 사업이다 보니 현행법으로 규율하기 어려운 부분들의 경우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스타트업들이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스타트업 육성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택시 등과 같은 기존 산업의 반발을 의식하는 바람에 제때 유권해석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승합차 호출 서비스인 타다는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합법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려 지난해 10월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택시 등의 반발이 확산되자 중재는커녕 눈치만 보다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야당이 택시 업계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자 타다 서비스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1년간의 갈등 끝에 검찰이 타다 서비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기소하면서 행정적으로 해결해도 될 일을 사법부 판단으로 넘기는 일종의 ‘직무유기’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스타트업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료는 “자원개발과 국정교과서 등 전 정부에서 행해진 핵심과제들이 적폐로 몰리는 상황에서 유권해석을 넓게 해줬다가 탈이 나면 나중에 누가 책임을 져줄 것이냐”며 “각 부서 내부에서 이미 해당 인사들을 검찰에 고발한 상황에서 관료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난센스”라고 말했다.

더구나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정쟁에만 매몰돼 스타트업처럼 지역에서 표가 되지 않는 현안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해 정부가 관련 입법을 추진해도 통과가 안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스타트업이 전통산업과 충돌할 때 정치권이 조정을 해줘야 하는데 정쟁에 이용해 논란만 증폭시켜놓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유관부처 장관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3월부터 8월까지 5개월간 국회가 멈췄고 (타다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며 “이 기간에 국회가 정부입법을 통과시켜줬다면 어느 정도 논란이 정리가 됐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법으로 해결한다고 해도 통상 1년 6개월 이상 걸리는 대법원의 판단까지 기다리려면 혁신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해외 스타트업이 국내에 속속 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법적 리스크는 토종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는 ‘역차별’ 규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정부나 국회 모두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 사이에 스타트업만 법적 리스크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제2벤처 붐 확산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다양한 부처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부처 관계자는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관련 부처들이 끊임없이 현안을 조율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타다 사태와 같이 국회가 태업을 해버리면 달리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김연하·이수민기자 yeona@sedaily.com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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