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금융위원회는 사모펀드 개인투자한도를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올리는 데 대해 난색을 보였다. 하지만 막판에 당정협의 등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3억원으로 상향하는 안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14일 브리핑에서 “한도를 상향할 것인가를 두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다”며 “1억원에서 3억원 사이의 투자금을 가진 사람은 ‘사모재간접펀드’라는 제도가 몇 년 전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책으로 1억~3억원 구간 투자자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잃었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으므로 적은 금액의 투자를 공모 형태로 모아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사모재간접펀드를 활용하면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현재 은행에서 판매하는 사모펀드와 주가연계신탁(ELT), 상장지수펀드(ETF) 등의 신탁 상품에는 구조화상품·신용연계증권·주식연계상품 등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며 “사실상 은행에서 대부분의 사모펀드와 신탁상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모펀드 최소투자금액이 올라가 가입 고객과 규모 또한 크게 감소할 것”이라며 “은행의 투자상품에 대한 전체 비즈니스 규모가 축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동안 은행은 이자수익 외에 저금리 시대의 대표적 중위험·중수익 상품인 ELT·ETF 등을 주력으로 판매해왔는데 제동이 걸리는 방향으로 불똥이 튈 수 있다는 것이다.
증권·사모펀드 업계도 방향은 예상했던 것이지만 규제 강도가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며 놀라는 분위기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체로 투자자 보호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에서 방향성은 맞다”면서도 “다만 진입규제 측면에서 최소투자금액 요건을 올린 것은 사모펀드 시장을 위축시켜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사모펀드 도입 취지를 훼손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중소 자산운용사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2·4분기 자산운용사 260개 중 영업적자를 기록한 회사가 118개사에 달했다. 특히 최소투자금액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높인 것은 가뜩이나 몇몇 대형 자산운용사에 투자자들이 몰리는 상황에서 중소 자산운용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앞으로 판매사들은 고객을 가려 받고 설명의무도 해야 하니 부담이 늘 수밖에 없고, 특히 기관이 아니라 개인고객을 주로 상대하는 자산운용사들은 사실상 영업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은행에서의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 금지, 최소투자금액 상향 외에도 여러 의무사항이 이번 대책에 포함됐다. 우선 공모펀드 판단 기준을 강화했다. 지금까지 공모펀드의 깐깐한 공시 의무 등을 피하기 위해 동일한 증권을 쪼개 사모 형태로 분할 발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는 6개월 내 50인 이상에게 판매되는 복수 증권의 경우 기초자산과 손익구조가 동일·유사할 경우 원칙적으로 공모로 판단하기로 했다.
녹취·숙려제도 적용 범위도 넓혔다. 현재 공모 파생결합증권(DLS)에 투자하는 70세 이상, 부적합 투자자에게만 적용된다. 하지만 앞으로는 65세 이상이거나 부적합 투자자가 어떤 금융상품에 투자하더라도 녹취·숙려제도를 의무화하기로 했고 고난도투자상품은 일반투자자에게도 제도를 적용한다. 투자자에게 투자할 의향이 있는지 깐깐하게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설명의무·판매절차 등의 과정에서 금융사가 투자자 대신 설문항목 등에 기재하거나 투자자 성향 분류를 조작할 경우 해당 금융사에 1억원 이하의 과태료, 6개월 이내의 업무 정지, 임원에 대한 해임 요구 등의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주문자위탁생산(OEM) 펀드 규제도 강화한다. 현재 법령상 자산운용사는 OEM 펀드 운용과 관련해 제재 근거가 명백히 규정돼 있지만 은행 등 판매사에 대한 제재 근거는 없다. 은행이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고 자사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자산운용사에 OEM 펀드 제작을 지시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앞으로는 판매사에 대한 제재 근거도 마련하기로 했다.
/이태규·빈난새·양사록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