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수출 낙수효과 없는 농업..무역이득공유제 다시 검토할 때

김병국 한국농업연구소장·전 농협중앙회 이사

농업·농촌 농산물시장 개방 직격탄

2015년 한·중FTA 이후 기업 모금

600억으로 목표 대비 20%선 그쳐

수혜·피해 산업 간 상생기반 필요

김병국 한국농업연구소장·전 농협중앙회 이사김병국 한국농업연구소장·전 농협중앙회 이사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에 이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협정문 타결 선언으로 농업인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농업계는 농산물시장 개방이 확대될 때마다 ‘전략 수출산업 보호’라는 명분 아래 항상 많은 양보를 감수해야 했다. 정부는 농업보호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으며 농심 달래기에 나섰고, 농업인들은 수출산업의 잉여가 농업·농촌에 재투자되는 낙수효과를 기대하곤 했다. 하지만 항상 결과는 양보가 더 큰 양보를 요구할 뿐 수혜산업의 농업 기여도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이처럼, 우리 농업은 시장개방이 확대될 때마다 선의의 희생이 절망으로 돌아오는 희망고문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가 발효되면서 시장개방을 통한 농업계의 피해를 보상하는 방안으로 ‘무역이득공유제’가 심도 있게 논의된 바 있다. 그러나 수혜산업인 대기업의 반대에 부딪쳐 법제화되지 못했으며, 타협의 산물로 ‘농업촌상생협력기금’이 도입되었다. 이 제도의 골자는 FTA 체결로 수혜를 보는 대기업의 기부를 받아 피해를 입은 농업·농촌을 지원하는 것이다. 연간 1,000억원(10년간 1조원)의 기금을 조성한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힌 바 있으나, 올해 8월 기준 모금액은 598억 원으로 목표액(3,000억원) 대비 20%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마저도 공기업 기부가 대부분이다.

당시에도 이윤 추구가 고유 목적인 대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해 농업을 지원하겠다는 대안 자체가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강제성 없는 제도의 도입은 수혜를 보는 수출 대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헌법 제 119조 2항에서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적정한 소득의 배분을 유지하고, 경제주체 간 조화를 통해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가의 역할이 산업간 이익조정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는 의미다. 수혜산업과 피해산업 간의 이익 조정은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산업간 이해상충을 조율하기 어려울 경우 정부는 직불제 등 보조금제도를 확대해 피해사업을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예산 제약이나 WTO 생산연계보조금 감축 등의 제한이 따른다. 따라서 무역이득공유제는 무역이익 조정에 대한 강제성을 부여하는 준조세정책의 범주 안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혹자는 무역이득공유제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로 FTA 수혜이익과 피해산출의 문제 등을 제기한 바 있으나, 이미 FTA 도입 이후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돼 극복 가능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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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이득공유제는 국가전략의 틀 안에서 산업 간 부가가치를 재설계하고 농업에 귀속될 정상적인 경제적 가치를 제도를 통해 정산 받게 해 경제 정의를 실현하는 제도다. 더욱 중요한 것은 타산업의 무역이득을 농업에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별 기여도에 따라 재분배하는 이익조정의 개념을 확립하는 것이다. 일례로, 농산업 무역수지는 2014년 -279억 달러에서 2018년 -321억 달러로 누적 적자가 15% 이상 늘어난 반면, 농산업을 제외한 전체 무역수지는 780억 달러에서 1,018억 달러로 누적 흑자가 30% 이상 증가했다. 필자의 눈에는 수혜이익과 피해액을 계산하는데 그리 복잡한 분석이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무역이득공유제의 도입은 단순히 보상의 문제를 넘어 한국농업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국정 철학과 국민경제에 대한 미래 비전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아가 식량안보, 농업의 환경가치, 농촌사회의 유지·발전 등에 기여해 미래 세대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 WTO의 개도국 지위 포기 등 농산물시장 개방의 파고가 더욱 거세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이미 소비된 정책으로 취급받아온 무역이득공유제는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는 한국농업의 간절함인 동시에 희생에 대한 정당한 요구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무역이득공유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지속 가능 농업·농촌을 위한 소득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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