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황

[투자의 창]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이 갖춰야 할 조건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고민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누가 적립금 운용의 책임을 질 것인가’ , 둘째는 ‘어떻게 수익률을 높일 수 있을까’다. 최근 발의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은 ‘디폴트옵션(자동투자제도)’ 도입을 담고 있는데 현재의 낮은 수익률을 개선하려는 취지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적립금 운용 방법을 지시하지 않을 때 미리 선정된 금융상품에 자동 가입시킨다. 문제는 가입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특정 상품에 투자하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디폴트옵션의 금융상품을 선정할 때는 앞으로 벌어질 다양한 상황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워낙 장기로 운용되는 퇴직연금인지라 최종 성과가 좋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이자율보다 수익률이 낮거나 심지어 손실이 발생한다면 가입자가 크게 반발할 것은 뻔하다.


이런 점에서 디폴트옵션으로 한가지 상품만 선정하면 위험 부담이 크다. 예를 들자면 최근 타깃 데이트 펀드(TDF)가 디폴트옵션의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으나 모든 경우에 완벽한 상품은 아니다. TDF는 운용하는 대부분 기간 동안 사실상 주식형 펀드다. 자발적으로 가입 의사를 밝히지 않은 근로자에게 적어도 이런 점을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TDF의 문제는 적립금 운용의 기준을 정년으로 설정한다는 점이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주식형 펀드에서 서서히 채권혼합형으로 전환하도록 설계돼 있다. 적립식 투자를 기반으로 한 공격적 운용에서 안정적 운용으로 연착륙하는 것이다. 문제는 대다수 근로자가 정년이 되기 전 이직을 하거나 퇴직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TDF 애초의 계획이 틀어지게 된다.



한꺼번에 목돈이 유입되는 경우도 문제다. 자신의 노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 변화로, 퇴직연금의 흐름은 회사책임형인 확정급여(DB)형에서 근로자책임형인 확정기여(DC)형으로 가고 있다. 전체 퇴직연금에서 적립금 기준으로 DC형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2년 17%에서 올해 상반기 기준 26%로 높아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DC형을 도입하는 기업도 있지만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하는 기업도 많다. 이런 경우 적립식이 아니라 목돈이 한꺼번에 투입되는 거치식이 되므로 디폴트옵션 적용이 좀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TDF는 적립식 투자를 상정하기 때문에 초기 주식 비중이 높아도 투자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고 본다. 목돈이 한꺼번에 들어온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디폴트옵션으로 한가지 금융상품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문제가 발생할 다양한 상황을 신중하게 고려해 포트폴리오를 설정해야 한다. 아무런 의견이 없는 가입자처럼 보여도 큰 손해를 본다면 절대 침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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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부 신한나 기자 han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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