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여는 수요일] 얼마나 익었나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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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막 딴 모과에 코를 대보고

아주 잘 익었다, 한다

할머니는 내 머리꼭지에 코를 대보고

아직 멀었다, 하곤 꿀밤을 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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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필 모과와 견주다니.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고 하지 않았는가? 난데없이 꿀밤을 맞긴 했지만 기대와 사랑의 표현이라는 걸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새파랗던 열매가 뜨거운 여름을 이겨내고 황금빛으로 익은 걸 두 눈으로 보며 자란 손자는 투덜거리면서도 수긍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얼마나 익었나’ 보자며 손주에게 꿀밤 먹이려는 위험천만한 할머니가 있을까? 웬만한 어른들 머리꼭지에 올라앉아 있는 ‘스마트한’ 손주들로부터 무사할 수 있을까. 나이 드는 것이 지혜와 공경의 대상이었던 시대는 다시 올 수 있을까. 철없는 과일을 먹으며, 인터넷과 유튜브를 어른으로 섬기는 시대에 우리 모두 잘 익을 수 있을까.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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