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지역 농·축협이 자생하는 길

김병국 한국농업연구소장 ·전 농협중앙회 이사

농·축협 성장 위해 농업 금융역량 확보하고

상호금융과 금융지주 간 시너지 구축 체계

"농·축산물 유통혁신은 농·축협 존재 이유"

김병국 한국농업연구소장·농협중앙회 전 이사김병국 한국농업연구소장·농협중앙회 전 이사



40여 년의 세월을 함께해온 일선 조합은 필자에게 평생 직장과도 같은 곳이다. 특히 농업인의 접점에서 20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조합장으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보니 모처럼 생각의 근육을 키우며 협동조합에 대하여 사유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어느덧 환갑을 목전에 둔 농업협동조합은 산업화 과정에서 밀려난 농업·농촌의 발전을 위해 대체하기 어려운 버팀목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처럼 앞으로도 잘 걸어갈 수 있을까 반문하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이 없어진다. 아마 일선 조합장으로 축적한 현장경험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단 한 번의 압도적인 경험으로 30년간 익숙해진 습관조차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농업협동조합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그 하나는 무엇일까? 그 답은 당연히 농·축협에서 찾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지역 농축협은 농업인과 지역경제를 연결하는 생산 거점인 동시에 경제·금융사업의 근간을 이루는 원천이기도 하다. 즉 농업 밸류체인의 시작과 끝에 농·축협이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농·축협의 성장 기반이 견고해야만 협동조합의 보편적 가치가 농업인의 풍요로운 삶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지역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농업을 둘러싼 경영 환경을 살펴보면 지역의 농·축협이 자생할 수 있는 토대가 빈약해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고조되고 있다. 이제는 농·축협의 지속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협동조합의 새로운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절심함이 엄습해 온다.

먼저 신용사업을 살펴보도록 하자. 지역 농·축협이 상호금융을 병참기지로 삼아 신용사업을 추진하는 기본 사상은 개별 조합이 직면한 지역금융의 한계를 극복하고 신용사업의 도·농간 경쟁력 격차를 해소하는데 있다. 상호금융을 통해 결집된 힘이 사업 기반이 취약한 개별 조합의 성장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농·축협의 관점에서 보면 상호금융의 양적 팽창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일선 현장에서 흔히 듣는 질문인 “전문 자산운용기관과 견줄만한 성과를 내고 있느냐?”, “그 성과가 도시·농촌 조합 간의 격차 해소에 얼마나 기여했느냐?”에서 질적 평가에 대한 답이 있을 것이다.


또한 상호금융이 실질적인 중앙은행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통 예대사업 중심의 단순 지도·지원에 그치지 않고, 개별 조합의 지역역량과 경영 여건에 적합한 새로운 사업 방식과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지역경제에 강점을 지닌 전문 금융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금융 역량을 강화하는 일도 상호금융의 몫인 셈이다. 구체적으로 농·축협이 농식품분야에 특화된 지역 금융기관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농업인뿐만 아니라, 종자에서 생산·가공·판매에 이르는 농업 밸류체인을 지원할 수 있는 금융 역량을 보유해야 하는데, 이 역시 상호금융의 존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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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농·축협과 농협금융지주 역시 협력과 경쟁이 상존하는 모호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이제는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서로 상생 협력할 수 있는 구조적인 해법이 필요한 때다. 협동조합금융의 틀 안에서 상호금융과 금융지주를 한 방향으로 모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협동조합의 소유·통제의 원칙이 바로 서야만 가능한 일이다.

농·축협의 존립 목적은 농업인의 생산활동을 지원하고 양질의 농산물을 좋은 가격으로 유통시켜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하는데 있다. 물론 농산물 수급 및 가격안정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협동조합의 우산 아래 생산지 농협과 소비지 농협간의 유기적인 협업구조를 시스템으로 정착시키는 실사구시 접근이 필요하다. 농·축협을 매개로 생산지와 소비지를 연결시키는 사업은 도·농간 조합격차 해소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 농업에도 일조할 수 있다. 아울러 그동안 농협중앙회가 최우선 가치로 추구해온 ‘농산물 책임판매 구현’도 이제는 실적으로 보여줘야 할 때다.

또한 농업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애로는 매년 농산물 수급불균형의 위험에 노출됨에도 불구하고 피해농가 지원은 사후적 관리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품목이 가격 충격에 노출될 경우 소비촉진 등을 통해 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기대하는 농업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농업관측 역량을 한 차원 높여 지역별·품목별 작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데이터 분석을 통한 농산물 수급관리와 가격 예측이 가능한 농업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경영학의 그루인 피터 드러커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을 것’이다.

협동조합의 이념을 현장에서 구현하는 농·축협이 지속 성장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에 집착하기 보다는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새로운 사업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그 안에 조합의 도농간 경쟁력 격차, 신용사업을 통한 농업 지원 등과 같은 농협 현안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협동조합의 동력인 농축협의 지역 기반이 견고해아만 농업·농촌·농협의 지속 가능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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