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북미협상, 시간은 누구 편인가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스스로 '연말시한' 선언한 北

ICBM·핵실험 등 도발 자중

데드라인 없는 협상 응해야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제목의 영화는 지난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에 보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라는 은행강도 커플의 처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적나라한 폭력 묘사 때문에 비난에 휩싸였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두 사람은 미주리주·오클라호마주·텍사스주에서 1년9개월간 주유소·시골은행·간이식당 등을 털며 12명을 살해하고 강도 행각을 벌였다. 내일이 없는 삶이었다. 실제로 보니와 클라이드는 1934년 잠복한 경찰들이 쏜 87발의 기총소사를 받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갑자기 할리우드 영화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북한과 미국의 협상 시한 때문이다. 서울을 방문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미국은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데드라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한국에 와 있고, 북한은 어떻게 연락해야 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며 북한에 회동을 정식 제안했다.


북한은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하노이회담 결렬의 분을 삭이지 못하고 미국에 ‘연말 시한’을 선언하며 스스로 족쇄를 채웠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렀다. 6월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화끈하게 힘을 실어줬다. 이후 판문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의 전격 회동은 평양의 체면을 세워줬고 10월 초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으로 양측의 협상 의지는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로 난관에 봉착하며 협상은 좌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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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회담 둘째 날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당신은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전용기에 올랐다. 이후 양측의 진실 게임이 전개됐다. 사달이 난 핵심은 두 가지다.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의 범위, 특히 해제 범위를 둘러싸고 양측 간에 ‘네 탓 공방’이 치열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핵 개발의 성지(聖地)인 영변만으로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외에 분강·강선 등 5곳에 대한 추가 비핵화 로드맵이 나와야 해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양측의 거래명세서 목록이 일치하지 않았다.

비건 대표는 북한의 연말 시한을 일축하며 하노이회담의 원칙에서 어떠한 변화도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미국 대통령이 자랑할 거리를 안겨줬으나…미국 측으로부터 받은 것이란 배신감 하나뿐(11월13일 국무위원회 대변인 담화)”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의 치적으로 자부하는 성과들에 해당한 값도 다시 받아야 한다(11월18일 김계관 외무성 고문 담화)” 등 최근 북한의 연속된 대미 메시지는 트럼프 대통령만 이익을 보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이 선언한 ‘연말 시한’은 이제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북한은 최근 ‘크리스마스 선물’이 무엇이 될지 미국에 선택을 강요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이를 따르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길은 인공위성을 가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추가 핵실험까지 다양하다. 북한은 12월 하순 노동당 전원회의와 김 위원장의 1월1일 신년사를 통해 그동안 미국에 경고해온 새로운 길을 구체화하기 위한 카드를 선보일 것이다. 평양은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해 도발 카드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 만약 북한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주인공들처럼 총질을 한다면 결국 영화처럼 비극적인 종말을 맞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병견전행(倂肩前行·어깨를 나란히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해왔다”고 강조하는 시 주석의 중국이 물론 북한을 지원하겠지만 북한의 추락은 명약관화다. 국제정치에서 협상의 데드라인은 없다. 경자년 새해 다시 협상에 나서야 한다. 올 연말연시는 북한이 시간은 누구 편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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