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청론직설]"극심한 저출산·고령화 해결하려면 노동시장부터 개혁해야"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

노동 양극화 따른 생존 고민에 결혼·출산 엄두 못내

고령화에 세금 부담도 커져 젊은이들 한국 떠날 것

정년 연장하되 임금체계 개편으로 기업 숨통 터주고

장기 비전 만들어 정권 바뀌더라도 일관성 유지해야

“한국은 지난 2001년 초저출산국가에 진입한 후 20년 가까이 탈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10여개 국이 이런 현상을 겪기는 했지만 대부분 단기에 회복했습니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최고 속도로 초고령사회로 돌진하는 한국의 미래를 비관했다. 그는 노인인구 비중이 서유럽에서는 30% 선에서 안정되지만 우리는 50%까지 갈 것이라며 그럴 경우 과다한 세금과 부담금 때문에 한국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이로 인해 한국 사회가 붕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저출산 위기 극복은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여년간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연구하다 3년 전 한양대로 옮긴 이 원장을 한양대 내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이 지난 9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빨라 국민연금은 기금이 고갈돼 폐지가 불가피해질 것이므로 기본소득 등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성형주기자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이 지난 9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빨라 국민연금은 기금이 고갈돼 폐지가 불가피해질 것이므로 기본소득 등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3·4분기 합계출산율이 0.88로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인구학적으로 두 지점이 중요하다. 하나는 합계출산율 2.1이다. 장기적으로 인구가 줄지도 늘지도 않는 안정인구(stable population)다. 그 밑으로 떨어지면 저출산국가다. 우리는 1983년 2.1에 도달했고 이듬해 1.76로 떨어진 후 35년간 회복하지 못했다. 두 번째 지점은 1.3인데 그 밑으로 떨어지면 초저출산국가다. 2001년에 초저출산국이 된 후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OECD 국가에서는 10여개국이 1.3 미만을 경험했지만 대부분 단기에 회복했다. 일본도 2년 만에 회복했다. 인구석학인 볼프강 루츠가 저출산에 빠진 후 어떤 비용과 희생을 치러도 회복하지 못하는 ‘저출산의 덫’ 가설을 제기했다. 우리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본다. 2018년에는 출산율이 심지어 1 미만으로 떨어졌다. 출산율 1 미만은 로마제국 멸망 직전과 2010년대 초반 대만에서 몇년간만 겪었을 뿐이다.

-인구구조가 역피라미드로 바뀌며 노인부양에 큰 문제가 생길 것 같다.

△출산율은 급감하는데 평균수명은 늘어나니 노인부양 문제는 불가피하다. 한국 사회의 고령화 속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노인인구 비율에 따라 구분한 고령화사회(7%), 고령사회(14%), 초고령사회(20%) 진입 속도가 ‘넘사벽(도저히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다. 노인인구 비율은 오는 2060년대에 무려 5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노인을 부양할 생산가능인구(15~49세)는 이미 2018년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한국의 고령화는 단순히 노인부양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젊은 세대의 한국 탈출, 한국 사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80대 이상 고령노인들이 많아져 세금과 복지비용 등으로 젊은 세대의 부담이 급격히 커지기 때문이다.

-4대보험의 재정 악화가 우려되는데.

△국민연금은 적립금이 고갈돼 폐지하거나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 제도는 젊었을 때 적립해서 나이들면 매달 일정하게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현재 평균 수명은 82세인데 30~40년후에는 90세를 넘어선다. 노인인구가 늘면서 연금지급이 늘어나 적립금이 2057년에 고갈될 전망이다. 보험료를 올린다든지 연금 급여를 줄이는 개혁을 해도 고갈 시기를 2~3년 늦추는데 불과할 것이다.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세금을 메기든지, 기본소득을 도입한다든지 대안을 모색해야할 것이다. 상상 속의 일이 아니다.

-지도자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하다. 프랑스 등 서유럽은 노인인구가 30%대에서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20%포인트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미래에 대한 책임이나 비전이 없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한번 발생하면 50~100년 간다. 초장기적인 비전이나 청사진을 갖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정권이 5년짜리다 보니 미래를 책임지려 하지 않고 당장 5년간의 성과에만 집착한다. 5년 간격의 기본계획이 변경될 때마다 전략도, 목표도 다 바뀌며 일관성이 없다. 일본이나 유럽·OECD 국가들은 대부분 초장기 청사진을 갖고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성 있게 정책을 이어나간다.

-현 정부가 복지 분야에서 지원을 남발하고 있지 않는가.

△인구 추이·재정·4대보험 등 미래에 대한 예상 데이터는 다 나와 있다. 관련해 수입·지출은 굉장히 간단히 계산이 가능하다. 지속가능하면서도 노동층의 삶의 안정성, 노년층의 기본 생활권 보장을 고려해 최대한의 설계를 해야한다. 특별한 임기내에 정책이 잘못 만들어지면 쉽게 바꾸지 못한다. 일본 정부도 과거 특정 임기의 과도한 지원확대로 부담이 너무 커져 고민이 많다고 한다. 인구학적 전망에 맞춰 정책을 중장기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노동시장 양극화가 저출산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있다.

△저출산 문제의 근원은 개인적으로 노동시장에 있다고 본다. 두 가지 측면이다. 하나는 노동시장이 학력·학벌주의로 차별이 심해 사교육비 부담을 초래하고 결국 양육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좋은 일자리를 넘겨줄 베이비붐 세대의 완전은퇴 시점이 아직 멀었다는 점이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3년에 걸쳐 형성된 베이비붐 세대(단카이, 1947~1949년생)가 은퇴하면서 출산율이 2005년과 2006년 저점을 찍고 반등했다. 노동시장에서 정사원의 비율이 높아지며 결혼이 늘고 출산율도 높아진 것이다. 우리나라는 해방과 6·25를 거치면서 베이비 붐 세대가 15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형성됐다. 2030년이 돼야 1970년대 초반 출생 세대까지 은퇴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저출산대책에 10년간 100조원을 퍼부었는데 효과가 크지 않다.


△돈을 많이 썼다고는 하지만 아직 선진국에 비해 많이 쓴 것은 아니다. 비용은 여러 해를 묶지 말고 1년 단위로 비교해야 한다. OECD는 저출산 지원 규모를 가족지출비용(familly expenditure)으로 비교한다. 한국은 이 지출이 2006년 저출산대책 시작 때 국내총생산(GDP) 대비 0.2%였다가 지금은 1.2%로 늘었다. 하지만 현재 OECD 국가 평균은 2.3%이며 프랑스·스웨덴·독일 등은 보통 4~5%를 쓰고 있다. 아직 선진국 대비 4분의1 정도를 쓰는 셈이다. 출산율을 낮추는 정책은 쉬워도 올리는 정책은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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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에 은퇴하더라도 국민연금을 받는 65세까지 소득이 없어 어려움이 있다.

△이 시기는 빙하의 틈새처럼 어렵다는 의미로 ‘소득 크레바스(income crevasse)’라고 부른다. 소득 크레바스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고용을 점차 연장하는 것이 좋다. 고령자들이 일을 하면 장점이 많다. 건강해지다 보니 의료비가 적게 들며 세금도 내고 가족에게 버림받지도 않는다. 젊은층과 고령자 사이에 일자리 충돌이 있지만 아직 크지 않다. 고령자가 고령사회를 책임질 수 있게 하면 좀 더 연착륙할 수 있을 것이다.

-정년만 연장할 경우 근무기간에 비례해 늘어나는 호봉제로 기업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정년연장을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먼저 기업에 숨통을 틔울 수 있게 임금체계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임금체계 개편은 일하는 방식의 개선과도 연계돼야 한다. 성과 베이스라든가 줄어들 근무시간에 비례해 임금을 지급할 수도 있다. 두번째로는 정년연장 외에 재고용, 정년폐지 제도 중 기업과 개인이 고르게 해야 한다. 재고용할 때는 재계약 과정에서 근로조건을 재조정할 수 있다. 일본이 잘하고 있다. 일본은 정년을 70세까지 연장했다.

-외국인 이민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출산율을 높이는 게 근본 해결책이다. 어떤 수단도 장기적으로 쓸 수 없다. 저출산 갭을 메우는 방법으로는 여성고용 확대, 고령층의 노동시장 탈출 완화 방안이 있고 그래도 부족하면 외국 인력 수입이다. 우리도 1 미만의 출산율이 장기화할 경우 불가피하게 돌봄·중소기업 등에 외국 인력을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외국인은 사회통합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이민이라면 철저하게 한국인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언어문화 교육은 물론 인권·복지 문제 등을 다 해결해줘야 한다.

-인구 감소로 소멸단계에 접어드는 지방도시가 적지 않다.

△세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커진다. 우선 지방에 인구가 살지 않는 지역이 넓어지면서 남아있는 인구(주로 노인들)의 생존이 위협을 받는다. 병원·상가 등이 사라져 돈이 있어도 소비할 수가 없고 대중교통이 뜸해 이동이 불편해지고 노쇠화하다보니 버스를 타기조차 힘들어진다. 소위 식품난민이라고 부르는 이런 현상은 일본과 독일에서 10년동안 굉장히 큰 문제가 됐다. 일본은 소멸도시 생존권 확보를 위해 10개년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두번째로는 버려진 농토, 생활시설들 등 자연환경 훼손문제가 생긴다. 세번째는 이를 통합하기위해 어디를 거점화 해서 살 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선진국의 저출산고령화 정책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어떤 정책을 도입하더라도 사회구조·문화 자체를 바꾼다는 점이 배울 만하다. 1970년대 스웨덴은 경제성장으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일·가정양립정책을 시작했다. 이때 여성이 절대로 결혼과 출산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책을 만들었다. 남성들이 퇴근 후 가사 절반을 부담하도록 퇴근시간을 철저히 지키게 했다. 육아휴직지원 제도는 부모보험제 도입으로 확장했다. 기존의 고용보험에서 주는 육아휴직 급여가 너무 적은 것을 개선하고 남성도 휴직이 가능하도록 아예 보험을 새로 만든 것이다. 남녀 모두 출산휴가를 쓸 수 있고 휴가기간에 급여는 80%까지 과감하게 지급했다. 스웨덴의 일·가정양립정책은 노동력 부족으로 시작했지만 출산율 저하까지 막아줬다. 직장 출퇴근시간과 어린이집 보육의 시작과 끝나는 시간도 맞췄다. 우리나라는 직장 퇴근시간과 어린이집·초등학교의 끝나는 시간이 맞지 않아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거나 돌봄에 맡겨야 한다. 선진국처럼 제도 하나하나를 고용·교육·보육·돌봄·젠더 등 여러 관점에서 융합되도록 연계하고 설계해야 한다.

-저출산 문제 개선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시장의 변화가 중요하다. 대기업 정규직의 소득을 100으로 했을 때 대기업 비정규직, 중소기업 정규직,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소득 수준이 각각 63·56·41로 양극화한 사회(2018년 6월 기준)에서는 결혼 자체를 꿈꾸기가 쉽지 않다. 노동시장에서는 학력·학벌·젠더·지위에 따른 차별이 엄청나게 심하다. 젊은이들은 여기서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조기결혼은 아예 포기하고 늦은 나이에도 결혼을 할까 말까 고민한다. 우리나라는 서구와 달리 결혼하지 않으면 출산하지 않는다. 미결혼 출산 비율이 20%도 되지 않는다.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낳을 경우에는 빚을 내서라도 유치원 때부터 사교육에 올인한다. 각자 노동시장을 겪어봐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또 노력하는 시늉보다 얼마나 일관성 있게 하느냐도 중요하다. 단편적인 정책보다는 사회구조와 문화 자체를 바꿔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He is…

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여년간 저출산고령사회 정책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저출산고령화 전문가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을 만들고 5개년마다 1차·2차·3차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모든 과정에 관여했다. 유엔 카이로인구센터에서 인구학석사 학위, 한양대 대학원에서 인구·사회구조·산업·발전 부문을 전공해 사회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이 지난 9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내 그의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형주기자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이 지난 9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내 그의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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