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밝힐 태양이 떠올랐다. 하지만 한국의 경자(庚子)년은 결코 개운한 마음으로 맞이하는 희망찬 새해가 아니다. 신년은 안보·외교·경제·정치 등 제 분야에서 분수령적 시기이며 그래서 대한민국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정세부터 그렇다. 경제·군사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러시아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항하면서 아시아와 유럽에서 신냉전 대결이 한층 격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군사력, 경제력, 핵무기 개발, 정보, 사이버, 우주 개발 등에서 가차 없는 대미(對美) 경쟁에 나서고 있으며, 군사적 초강대국으로의 복귀를 원하는 러시아도 경쟁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랜드마크적인 핵 군축으로 평가됐던 미러 간 중거리핵폐기조약(INFT)은 지난해 8월 파기됐고, 지금 세계는 미·러·중이 주도하고 북한·이란 등 후발 핵 개발국들이 가세하는 새로운 핵 경쟁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전후청산과 군사적 강대화를 꾀하는 일본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동참함에 따라 아시아에서 북·중·러 등의 구(舊) 사회주의 블록과 미일동맹 간 세찬 힘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이 양자 사이에 위치한 한국의 현주소는 매우 애매하다.
신고립주의에 기초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는 기존 동맹들을 사정없이 흔들고 있다. 미국은 자유세계 수호자로서의 세계경찰 역할을 포기하고 동맹국에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라고 닦달하면서 파리기후협약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다. 5년간 함께 ‘이슬람국가(IS)’ 소탕작전을 벌였던 쿠르드족 민병대와의 동맹도 청산했으며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 급격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거센 충격파를 보내고 있다.
‘까칠하고 고압적인’ 중국의 팽창주의가 주변국들에 심대한 미래위협으로 다가오는 가운데, 구 사회주의 블록의 결속으로 중·러라는 든든한 배후세력을 확보한 북한으로서는 핵을 포기해야 할 이유를 더더욱 느끼지 못할 것이다. 어떤 표현을 사용하든 기본적으로 북한이 완강하게 고수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문재인 정부가 성원하는 북핵 해법은 북한의 일정 수준 핵 무력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제반 관계를 정상화하자는 것이다. ‘완전한 북한 비핵화’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북핵을 둘러싼 ‘위기-협상-합의-합의 불이행’이라는 악순환은 앞으로도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일 것이며, 이 때문에 2020년은 ‘비핵화 환상’ 속에 안주할 것인지 아니면 현재와 미래의 국가생존을 위한 ‘핵 균형’을 서두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이 된다.
이러한 평가는 한국 정부가 지난 2년 반 동안 고수해온 좌파적 수정주의가 기로에 섰음을 의미한다. 이 기조하에서 한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불참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를 시도했다. 한국은 한일관계 악화와 한·미·일 안보 공조 체제 약화라는 희생을 치렀지만 달리 보상을 받은 것은 없다. 중국의 ‘한국 때리기’와 북한의 하대(下待)는 더욱 심해졌다. 또 한국은 북한이 핵 포기를 약속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국군의 역량을 축소하고, 한국을 북한군의 기습공격에 취약하게 만든 9·19남북군사분야합의에 서명했으며, 동맹의 연결고리를 약화할 ‘전작권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진실로 새해는 한국의 정책결정자들이 외교 고립, 안보 약화, 동맹 균열 등을 초래해온 ‘통북(通北)·친중(親中)·탈미(脫美)·반일(反日)’ 기조를 고수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를 결심해야 하는 해이다.
새해는 국내 정치적으로도 중대한 기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문 정부가 개헌, 법 제정, 제도 도입 등을 시도해왔다는 점을 종합한다면, 4·15 총선 결과에 따라 한국 안보·외교정책의 향방이 정해짐은 물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도 변곡점을 맞이할 수 있다. 물론 극심한 분열 속에 치러질 이 선거가 얼마나 정확하게 국익의 향배를 짚어줄지는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