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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서소문역사공원, '도심의 음지' 상흔 지우고...역사·문화 공간으로 재탄생

서소문역사박물관 내 위치한 하늘광장. 높이 솟은 적벽돌 벽은 결국 시선이 하늘에 머무르게 한다./권혁준기자서소문역사박물관 내 위치한 하늘광장. 높이 솟은 적벽돌 벽은 결국 시선이 하늘에 머무르게 한다./권혁준기자




서소문역사공원 전경./서울시 제공서소문역사공원 전경./서울시 제공


수많은 고층 오피스빌딩들이 늘어진 서울시 중구. 서울역으로 들어가는 경의선 철로까지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 무심한 듯 놓여 있는 녹지공간. 바로 서소문역사공원이다. 이 공간은 조선 시대 400여년 동안은 ‘서소문 밖 네거리 처형지’로 국사범의 처형장으로 쓰였다.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구한말 서소문 전투의 군인들 등 사회개혁 세력들이 이곳에서 처형됐다. 특히 19세기에는 수많은 천주교인이 순교한 장소다. 처형된 천주교인 중 44명이 성인으로 추앙돼 국내 최대 천주교 성지이기도 하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참배하기도 한 곳이다.

서소문역사공원은 1970년대 한 차례 근린공원으로 조성됐지만 경의선 철로와 서소문 고가로 인해 접근로가 차단되고 주변에 재활용쓰레기 처리장 등이 들어서면서 ‘음지의 공간’으로 전락했다. 노숙자들만 찾게 된 ‘잊힌 공간’을 서울시 중구는 추모공간과 전시기념관을 담은 역사박물관·공원으로 다시 한번 재구성하기로 했다. 현재는 음지에서 역사문화의 공간으로 바뀌며 도심 내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서소문역사박물관 입구./권혁준기자서소문역사박물관 입구./권혁준기자


<지상은 공원, 지하에는 박물관>

수목 45종 등 심어 연중 꽃으로 가득

과거 주차장 리모델링...복합공간 조성



서소문역사공원의 특징은 지상은 공원, 지하에 박물관을 배치했다는 점이다. 지상에는 다양한 수목으로 구성된 숲을 만들어 외부와 내부 공간을 분리했다. 숲이 만들어낸 공간과 군데군데 나와 있는 건축물과 작품 등은 서로 어우러져 지상 공원을 구성한다. 앞서 1984년에 세워진 순교자 현양탑은 그대로 보존한 채 광장을 공원 중심부에 놓고 녹지와 휴식 공간을 확대 조성했다. 소나무·대왕참나무·장미 등 수목(45종) 7,100주와 창포·억새 등 초화류(33종) 10만본을 심어 연중 꽃으로 가득한 힐링 공원이 되도록 힘썼다.

지하에는 과거 주차장으로 쓰이던 공간을 리모델링해 역사박물관을 만들었다. 지상 1층·지하 4층, 연면적 4만6,000여㎡ 규모에 달하는 광대한 복합공간에는 전시실을 포함해 하늘광장·콘솔레이션(consolation)홀·도서관·세미나실 등이 배치돼 있다. 적벽돌, 그리고 철제 벽은 공간을 어둡게 만들지만 의미 있는 공간에서는 빛을 활용해 밝음과 어둠이 대비되도록 구성됐다.

서소문역사박물관 내부 상설전시실. 조선시대 시대 정신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권혁준기자서소문역사박물관 내부 상설전시실. 조선시대 시대 정신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권혁준기자


하늘광장과 외부 공원을 잇는 하늘길./권혁준하늘광장과 외부 공원을 잇는 하늘길./권혁준


<방문객 유도하는 순례길 따른 동선>

계단 등 오르내리는 복잡한 길 최소화


자연스럽게 박물관·광장 관람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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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박물관 내부는 동선이 복잡하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보면 막힌 길을 마주하게 된다. 오르내리는 계단을 적게 배치해 관람객들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오르내릴 수 있는 공간은 건물 내에는 전시공간과 가까운 계단과 경당·콘솔레이션홀을 잇는 경사로 두 개뿐이다. 외부에는 하늘광장과 바깥 공간을 연결하는 하늘길만이 있다. 그리고 이 3개의 길의 종착점은 한 곳으로 이어진다. 막힌 길을 돌아 나오며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하늘광장과 콘솔레이션홀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아울러 동선을 따라 이동할수록 경건함과 웅장함이 느껴지도록 설계됐다. 장소마다 층고가 다르고 공간의 깊이감도 다르다. 우선 박물관 안으로 진입하면 반복되는 격자로 형상화된 로비를 마주하게 된다. 십자 기둥이 위엄을 드러내고 있는 공간을 지나면 지하 전당을 두른 어두운 램프가 나타난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모퉁이에는 성인 정하상을 기념하는 작은 경당이 있다. 여기서는 매일 미사가 열려 그의 넋을 위로하는 동시에 모든 순례자의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설교자의 목울림은 경당 벽을 부딪치며 청동의 문밖 램프까지 울려 퍼지는 구조다.

서소문역사공원 내부에 위치한 콘솔레이션 홀./권혁준기자서소문역사공원 내부에 위치한 콘솔레이션 홀./권혁준기자




<과거의 상처를 현재의 의미로>

모두에게 열린 콘솔레이션홀·하늘광장

신념 지키고 희생한 영혼들의 넋 위로



역사공원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공간은 ‘콘솔레이션홀’이다. 콘솔레이션홀은 지면으로 14m 아래에 마련돼 있다. 튜브 모양이며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사멸한 위인을 기리는 곳이다. 두께 1.5m의 두꺼운 벽은 공간에 분명한 경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사방이 지면으로부터 2m가량 떠 있어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철제 패널로 둘러싸인 네 면은 멀티 프로젝터를 통해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에 활용될 수 있도록 했다. 평시에는 성당의 모자이크 화면을 띄워 공간에 경건함을 더하지만 그 외 행사 시에는 성격에 맞는 화면으로 바뀌기도 한다.

하늘광장도 주목받는 공간이다. 이 광장은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정신을 기리는 추념의 의미를 담아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지하 3층에서 지상의 공원까지 뚫려 있는 구조로 만들어진 하늘광장에서 양옆으로 높이 솟은 벽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시선은 결국 하늘에 머무르게 된다. 설계를 맡은 윤승현 대표는 “과거의 상처를 공감 가능한 공간으로 치환하려고 했다”며 “이런 과정을 의미화해 관람객에게 독특한 성격으로 전달되도록 하는 일련의 작업이었다”고 밝혔다.

서소문역사공원과 박물관은 천주교 순례객들이 찾을 수 있는 성지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으면서도 일반 시민도 찾아볼 만한 공간이다. 이러한 의미를 인정받아 서소문역사공원과 역사박물관은 지난해 ‘2019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사회공공 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앞서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시민공감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권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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