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16일 한국 정부의 독자적인 남북 협력사업 구상을 겨냥해 ‘한미 간 협의’를 재차 강조했다. 우리 정부가 북한 개별관광 추진을 비롯한 ‘독자적인 남북협력 공간 확대’ 정책을 검토하자 이에 공개적으로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하지만 이날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금강산 관광·대북 개별방문을 언제든지 이행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남북 협력사업을 두고 한미 간 이견이 가시화된 모양새다.
로이터 통신은 해리스 대사가 이날 서울 모처에서 외신기자들과 만나 한국 정부의 개별 관광 추진에 대해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해리스 대사는 미국 정부의 공식입장은 아니라고 설명하면서도 미국과의 협의 강조했다. 해리스 대사의 이 같은 발언은 한국 정부가 무리하게 개별관광을 강행할 경우 대북제재 위반에 따른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돼 파장이 예상된다. 그는 “제재하에서도 관광은 허용된다”면서도 “관광을 갈 때 가져가는 물품 일부는 대북제재하에서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리스 대사는 “관광객들이 어떻게 북한까지 갈 것인가. 중국을 거쳐 갈 것인가. DMZ를 거쳐 갈 것인가. DMZ라면 유엔사가 관련돼 있다. 어떻게 돌아올 것인가”라며 개별 관광을 콕 집어 지적했다.
해리스 대사는 남북협력이 북미 대화에 앞서 가면 안 된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도 분명히 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구상에 대해 “문 대통령의 지속적인 낙관주의(continued optimism)는 고무적이다. 낙관주의가 희망을 낳고 그것은 긍정적인 일”이라면서도 “낙관론을 행동에 옮길 때는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말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해리스 대사는 이달 초 국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남북교류 협력을 강조한 데 대해 “미국과 협의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반면 청와대는 이 같은 남북 협력사업의 이행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노 실장은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남북협력 사업으로 무엇을 구체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느냐’는 질문에 “금강산 관광이나 대북 개별방문의 경우 유엔 대북제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언제든 이행할 수 있으며, 이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 실장은 “상당 부분 제재 면제를 받은 것, 혹은 제재 면제의 사유가 있는 것들이 있다”며 “면제 사유가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면제 협상을 할 생각”이라고 부연했다. 오히려 이 같은 협력사업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북미대화도 원활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 실장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상호 영향을 미치고 연계돼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대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유엔의 대북제재 및 미국의 단독제재 등 모든 부분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15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인근 덜레스국제공항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개별 관광 추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상대의 이해를 구하는 게 지금 제일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별 관광 등의 대북제재 예외인정을 받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도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고 “올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실질적인 진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남북협력을 추진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한편 한미 관계의 또 다른 뇌관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도 양측은 신경전을 지속하고 있다. 외교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한미가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6차 회의를 가졌으나 양측 간 입장 차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북한 비핵화 협상’ ‘방위비 분담금’ ‘호르무즈 해협 공동방위’ 문제 등 한미가 주요 안보현안을 두고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내면서 양국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우인·양지윤기자 wi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