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법원의 조직적 범죄 정황 없다" 제동 걸린 文정부 사법적폐청산… 양승태 재판 등도 줄줄이 영향

유해용에 이어 성창호 등 3명도 1심 무죄

공소사실 직결된 양승태·임종헌 등 영향권

14일 정경심 재판장의 임성근 1심 결과 주목

무죄 이어지면 문재인·김명수와 법원 대립각

이탄희·이수진·최기상 등 총선 입지 '흔들'

13일 1심 무죄 판결을 받고 법원을 나오는 신광렬(왼쪽부터)·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 /연합뉴스13일 1심 무죄 판결을 받고 법원을 나오는 신광렬(왼쪽부터)·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 /연합뉴스



“법원행정처 내부에서 수사 확대를 저지할 목적으로 검찰 압박 방안을 마련해 실행했다고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가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내놓은 판단 이유다. 재판부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현직 판사들에 대한 첫 판결을 내리면서 이들이 법원행정처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정운호 게이트’ 관련 수사기밀을 유출한 건 아니라고 봤다. 통상적인 사법행정 업무 절차였다는 것이다. 나아가 일부 유출된 수사 정보도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신광렬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으로서 사법행정 차원에서 법관 비위 관련 내용을 행정처에 보고했을 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고 부당한 조직 보호에 나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도 신 부장판사의 보고 요청에 응한 것이지 영장재판을 통해 취득한 정보를 누설하기로 공모한 정황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날 긴장한 표정으로 선고를 기다리던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는 최종적으로 무죄 판단이 나오자 웃음을 띠며 변호사들과 악수를 나눴다. 신 부장판사는 재판 직후 취재진을 만나 “현명한 판단을 해주신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고 성 부장판사의 변호인은 “사실관계로 보나 법리적으로 보나 (검찰 기소가) 무리한 측면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성 부장판사는 지난해 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직후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구속시켜 진보세력으로부터 “양승태 키즈의 보복 판결”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 인물이다.


양승태 사법부 의혹과 관련해 무죄 판단이 나온 것은 지난달 13일 대법원 재판 검토보고서 유출·파기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관련 의혹에 대해 지금껏 나온 모든 1심 결과가 ‘완전 무죄’로 모이면서 검찰 측은 이를 뒤집을 만한 증거와 논리를 찾아야 하는 어려움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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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들 세 판사의 혐의는 수사기밀 유출을 지시하고 보고받았다는 임종헌 전 차장,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양 전 대법원장 공소사실과도 바로 연결되는 혐의인 만큼 다른 연루자들 재판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만약 14일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까지 무죄를 선고받을 경우 양 전 대법원장 등은 더 유리한 고지에 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임 부장판사의 1심 재판은 정경심 동양대 교수 재판에서 검찰의 기소과정을 깐깐하게 살펴 주목받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송인권 부장판사)가 맡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개인의 권력형 비리가 없는 전형적인 조직적 범죄 혐의로 구성됐다. 애초부터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등 다른 적폐 사건과는 그 형태와 출발이 전혀 달랐다. 특정 회사의 돈을 횡령했거나 뇌물을 받아 사익을 챙긴 혐의가 아니라 ‘상고법원 도입’이라는 사법부의 숙원 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행정처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엘리트 판사들을 청와대·국회 로비 작업에 동원하고 일선 재판부와도 교감을 나눴다는 게 사건의 핵심이다. 실제로 양 전 대법원장의 경우 47개 혐의 중 직권남용만 무려 41개에 달한다. 몇몇 연루자만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아도 무죄 판단을 받을 수 있는 법관들이 도미노처럼 늘어난다는 얘기다.

판사들이 양승태 사법부에 잇따라 면죄부를 줄 경우 수사에 직접 힘을 실어준 문재인 대통령, 이에 협조한 김명수 대법원장과 본격적으로 척을 지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무리한 수사’였다는 법원 판단에 대해 여권 등에서 ‘제 식구 감싸기’라는 공격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죄 판단이 계속될 경우 최근 ‘사법농단 의인’을 표방하고 여당에 입당한 이탄희 전 판사, 이수진 전 부장판사, 최기상 전 부장판사의 총선 입지도 크게 흔들리게 된다.

이 사건은 법원의 비협조와 검찰의 눈치 보기가 이어지던 지난 2018년 9월13일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이 “의혹을 반드시 규명하라”고 강조하고 김 대법원장이 “적극 협조하겠다”고 화답하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검찰은 이에 힘입어 다른 주요 수사들을 ‘올스톱’한 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때보다도 훨씬 많은 검사들을 무려 7개월 이상이나 투입했다. 같은 달 서울중앙지법은 검사 출신 명재권 부장판사를 영장전담 법관으로 추가 영입해 양 전 대법원장 구속 결정을 맡겼다. 대법원은 또 임 전 차장의 재판부 기피 신청을 이례적으로 7개월 넘게 뭉개다 법원 인사 직전인 1월30일 윤종섭 부장판사의 서울중앙지법 5년 잔류를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기각 결정을 내놓았다.

관련 재판들과 무관한 재경지법의 한 고위 판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실체가 있기는 했던 의혹이었는지 의문이 든다”며 “당시 사법부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무리수를 뒀다 해도 그 행위들이 형사처벌 대상인지는 또 별개”라고 설명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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