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살에 시작한 두 번째 직업” 여행 감독, 고재열입니다.
“국내 최초 여행 감독”, 무슨 일 하세요?
<<창업을 넘어 ‘창직(Job Creator)’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끊임없는 세상의 변화와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 회사에서 찾지 못한 직업 정체성에 대한 숙제를 개인들이 스스로 고민해 찾게 된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의 직업을 새롭게 정의내리기 시작했다.
회사 다닐 때는 명함으로 쉽게 넘어갔던 직업 정체성. 퇴사를 한 사람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해 나갔다. 획일화된 교육과 취향에 대한 존중을 배우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 시간이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분명 찾아야 하는 과정이었다.
‘원부연의 직업의 탄생’은 스스로 창직을 한, 나만의 단어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개인과 산업 두 영역에서 새로운 화두를 제시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두 번째 커리어를 꿈꾸는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인사이트를 전하고자 한다.>>
원부연의 직업의 탄생, 그 첫 시작은 시사저널 기자로 시작해 시사인을 창립한 고재열 기자와 함께했다. 그는 2020년 2월을 마지막으로 기자 생활을 정리하고 두 번째 직업을 시작한다. 새로운 직업 역시 타이틀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국내 최초 여행 감독’으로 정했다. 여행사와 비슷한 듯 다른 그의 새로운 직업은 놀랍게도 국내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단어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궁금했다. 여행 감독이라는 새로운 직업으로 그만의 비즈니스를 어떻게 풀어갈 계획인지도 자세히 듣고 싶었다.
서울역 ‘여행자의 서재’에서 고재열 기자를 만났다. 약속시간이 되어 도착한 그의 손에는 허름한 캐리어 가방 두 개가 들려 있었다. 곧 인천공항에 갈 기세였다. 그런데 주섬주섬 열린 여행가방에는 놀랍게도 책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그의 야심작 ‘캐리어 도서관’ 프로젝트였다.
<세상에서 가장 큰 도서관을 꿈꾸는 여행 감독>
-세상에서 가장 큰 ‘캐리어 도서관’, 어떤 프로젝트 인가?
“서울역에 있는 ‘여행자의 서재’ 공간 활성화로 낸 아이디어가 시작이었다. 캐리어 도서관의 가장 좋은 점은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캐리어 100개 정도만 채워도 꽤 번듯한 도서관이 될 수 있다. 날이 풀리면 야외 벤치에 툭 둬도 좋다. 책이니까 몇 개 가져가도 괜찮지 않겠나. 모빌리티가 가능하기에 도서관을 원하는 지역이라면, 섬마을과 오지에도 갈 수 있다. 큰 책장도 예산도 필요 없다. 소수의 자원 봉사자만 있으면 된다.”
-‘여행자의 서재’와의 인연이 따로 있었나?
“서울로 7017 관련 매거진을 만들 때 편집위원으로 도와준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후 담당자분들과 소통을 자주 했고. 여기 활성화에 대해 고민하다 캐리어 도서관 아이디어도 나오게 되었다. 어찌 보면 오래된 캐리어와 책, 둘 다 버려지는 속성인데 그 조합도 신기하고. 맞은편 문화역서울 284에서 ‘호텔사회’라는 테마로 전시중이다. 한 공간에 다양한 캐리어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담당자분이 전시 후 캐리어 도서관을 위해 기증해 주시기로 했다.”
<여행 동아리인 ‘여행 동아리’를 만들다>
-여행에 관한 아이디어의 시작은 무엇이었나?
“패키지 여행은 여행에 관한 솔루션 중의 하나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제성을 갖는 것을 비롯 해 혼자라면 엄두를 못 낼 여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하지만 여행의 묘미인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기’를 할 수 없는 구조다. ‘왜 내가 이렇게 좋은 곳에 와서 좋은 경험을 하며 모르는 사람들과 있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할 수 없기 때문인데, ‘알아갈 사람들과 여행을 하게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여행 상품 공유는 어떻게 하나?
“나는 사람이 여행을 위해 모이는 방법들을 먼저 고민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여행 가기가 어려워진다. 마음은 바빠지고 함께 갈 여행 친구는 줄어든다. 그래서 여행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시기가 있다. 대체로 30대에서 50대 까지가 그렇다. 사람들끼리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우니 관점을 바꿔 보았다. 시간에 사람을 맞춰보기로. 그 시간에 맞는 좋은 사람들을 모아 함께 간다면 자연스레 여행 동료들과 인맥 네트워킹이 생긴다. 그래서 회원제를 지향하고 있다.”
-좋은 사람을 모았다 해서 다 같이 선뜻 여행을 갈까?
“당연히 좋은 여행 상품이 있어야 한다. 일단 가을 코카서스 대자연 기행, 봄 이탈리아 돌로미테 여행을 구상해 뒀다. 여행 기획을 하는 입장이니 헤드 라이너, 즉 여행 감독을 세운다. 이를 정하고 루트와 옵션을 구성한 뒤 여행사에게 맞춰줄 수 있는지 문의한다. 일반인 대상 해외 여행기획이라면 여행사를 통해야 하지만, 그룹이 자기들끼리 가는 거면 상관없다. 그래서 나는 여행 동아리를 만들었다. 외부 사람을 모객 하는 게 아닌, 내부 그룹이 함께 가는 것이다. 우리의 여행 기획을 여행사에 의뢰하는, 군더더기를 모두 뺀 다이렉트 공동 구매라고 보면 된다.”
-여행 동아리 이름이 뭔가?
“그냥 여행 동아리다. 향후 트래블러스 랩 (Traveller’s Lab) 으로 고려 중이다.”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시스템인가?
“동아리지만 온라으로만 알게 된 관계는 무효다. 오프라인에서 여행 등 직접 만난 사람들에게만 자격이 주어진다. 물론 10박이 넘는 길고 먼 여행을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기준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국내여행을 사이사이 기획해 짧은 여행 경험을 제공한다. 거기에만 참석해도 멤버 자격이 부여된다. 이미 2020년 1월에만 4번의 국내 여행을 다녔다.”
<직업으로서의 여행 감독이란>
-국내 최초 여행 감독이란 말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여행 감독이란 말을 검색 사이트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그런데 잘 보면 여행 관련 직업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쓰는 단어가 ‘여행 작가’다. 작가는 정말 많은데 왜 감독을 해볼 생각은 안할까? 그래서 여러 프로그램을 취미로 기획하다 2019년에 들어서면서 스스로 여행 감독을 자처하게 되었다. 2020년으로 넘어갈 때 플랫폼화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여행 감독과 여행 작가, 어떻게 다른가?
“여행 작가는 차려놓는 밥상에 초대받는 경우가 많다. 여행 감독은 그 밥상 자체를 차리는 역할을 한다. 나는 그 역할에 흥미를 느꼈다. 여행가라면 한번쯤 해봐도 좋을 도전이지 않겠는가.”
-왜 여행 작가만 유독 많을까?
“자기가 밥상 차리는 건 조심스러워 아닐까? 또 대체로 개인 여행에 중점을 두게 되니 그럴지도 모르고. 굳이 불편함과 나의 시간을 써가며 판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내가 판을 까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자처 했던 게 아닐까 싶다. 결국 그 부분이 차별점이 되었다.”
-판을 만든다는 것, 흥미롭다.
“여러 사람들과의 커뮤니티를 활용 해 이런 저런 판을 만들어봤는데 여행 쪽 만족도가 제일 컸다. 사실 중년에 들어가면 인간관계가 의외로 황폐해진다. 나는 그런 시기 장기여행이 인생의 중간 급유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다른 사람들과 중간 급유의 과정을 함께 경험하면, 어떤 특별한 관계가 형성된다. 인간관계란 끊임없는 노력으로 유지가 되는 법인데, 여행을 통해 서로에게 노력하는 새로운 마을이 만들어지는 느낌이다.”
<시사인 기자, 여행에서 소명의식을 느끼다>
-아직 시사인 기자다. 언제 그만두나?
“사실은 작년 10월부터 일을 슬슬 놓았다. 쿠바 여행이 회사와 함께하는 마지막 프로젝트다.”
-문화전문 기자로 오래 일했다. 기자와 여행 감독,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
“기자의 르포취재도 섭외력인데 여행 감독도 마찬가지다. 또한 사전 조사를 많이 할수록 보이는 게 많고 할 이야기도 많아진다. 차이점이라면, 기자는 자기 일만 잘하면 된다. 그러나 여행 감독은 찾아와준 사람들의 반응이 더 중요하다.”
-여행에 대한 관심이 원래 컸나? 직업으로 정할 만큼.
“처음에는 여행을 직업으로 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어떤 소명 의식을 느끼게 된 계기가 섬 여행이었다. 성인분들과 섬 여행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이 나에게 여기 오게 해줘서 고맙고 감동 했다며 피드백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자기 이야기들을 토로하며 개인사나 고민을 깊게 나누고. 섬 안에서 (이후 여러 여행지에서) 뜻밖의 서사들을 만났다. 다들 사회생활도 잘 하고 잘 사는 사람인데 마음 속 외로움과 원초적 두려움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들이 와서 자연스레 치유를 받고 가는 듯 했다. 나는 여행이라는 플랫폼만 제공했을 뿐인데.”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인가?
“그렇지도 않다. 와서 사람들이 어느 순간 자기들끼리 알아서 이야기를 한다. 들어준 건 오히려 내가 아니라 거대한 자연이었다. 묵묵히 바다와 산이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준 거다.”
-나름 여행의 미학을 가지게 되었을 것 같다.
“나는 여행은 철저히 ‘오해의 미학’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야기하면 자연이 들어준다 생각하는 것. 그 안에서 갑자기 자기 고백적인 시간이 만들어진다.”
<비즈니스 모델에 대하여>
-어쨌든 사업화 예정이다.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가?
“회원제 여행 플랫폼을 구상중이다. 회원들에게 기간 및 상품별 구독료를 받을 거다. 여행이니까 구독료가 일종의 계약금 형식일 수도 있겠다. 여행 감독 기획비나 준비비로 사용될 예정이다.”
-독서모임 플랫폼 ‘트레바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들었다. 참고했던 지점은?
“시즌제를 참고했다. 구상중인 플랫폼도 시즌을 두며 맺고 끊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관계의 지나친 친밀감이 때론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우리 플랫폼은 1년 단위로 구상중이다. 여행은 준비과정도 길기 때문에 1년 단위가 적당할 거라 본다.”
-여행 플랫폼의 핵심은 무엇인가?
“검증된 여행 상품을 구독하는 시스템이다. 1년 구독료를 두고, 다른 상품 대비 10프로 비싼 여행을 베타 테스트로 셋팅 예정이다. 결국 상품의 내용이 중요한데, 사실 기존 여행 상품은 덤핑이 많다. 현지에 가서 쇼핑을 해야 한다거나 등. 이런 상품과는 분명한 차별점이 있을 것이다. 다소 비싼 만큼 ‘최고 여행 위원회’ 등을 둬서 좋은 콘텐츠를 계속 채우려고 한다.”
-타겟팅을 어느 정도 한다고 들었다.
“90년대 학번 중심의 여행 동아리를 지향하기로 했다. 사실 나이가 너무 많아지면 산악회 분위기로 흘러가고, 또 너무 어린 친구들이 오면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 그래서 내 “또래기도 한, 90년대 학번 정서를 경험한 분들을 메인으로 하고 있다. 대신 각자의 역할도 동아리처럼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90년대 학번 정서를 지향하고 싶어, 나름 분위기도 신경 쓰는 편이다.”
-대형 여행사는 하기 힘든 시스템이겠다.
“쉽지 않을 것이다. 모객 형태나 구조도 복잡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모델은 기동성이 중요하다.
여행사의 제품이란 싼 대신 일괄적이거나 유명인 누군가와 같이 가니 비싼 돈을 내는 양극화 시스템이다. 그런 여행의 퀄리티란 아쉬울 수밖에 없다. 내가 기획한 여행은 현지 경험을 우리 스타일대로 큐레이션 하는 재미가 있다. 여행사의 기성복을 수선해 쓰는 개념이다.”
-지역별 전문가가 중요할 거 같다.
“그래서 나 뿐 아니라 새로운 여행 감독을 계속 발굴하려 한다. 누군가를 발굴할 때 나의 역할은 감독이 아닌 프로듀서가 된다. 발굴한 그가 여행 감독이 된다.”
<시장 경쟁력을 찾아라>
-고재열 여행 감독이 준비한 여행상품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이다. 아무리 잘 아는 여행 전문가 데려가 봤자 현지에 수 십 년 있던 분을 따라갈 수 없다. 그게 여행의 맛이라고 생각한다.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현지 전문가 네트워킹을 최대한 활용해 비용 거품을 뺀다면, 상품에 대한 만족감도 더 크지 않겠는가.”
-새로운 감독을 발굴하는 프로듀서도 할 거라 했다. 주로 어떤 분들이 참여할까?
“현재 8호까지 구상했고, 총 100명이 목표다. 예를 들면 세상의 소리를 찾는 분이 있다. 세계 민속 음악에 있어 우리나라 대가다. 그와 함께 3부작 여행을 짜 볼 수 있다. 현악기 로드, 관악기 로드, 타악기 로드. 영국 극장 투어를 함께하고 싶은 분도 있다. 다만 해외에서 직접 진행할 여력이 될 때에만 정식 여행 감독으로 임명 할 수 있다.”
-당장의 2020년 상반기 계획은 뭔가?
“해외 장기 여행을 제대로 셋팅하는 것. 가급적 더 어려운 숙제를 풀어가고 싶다. 사실 일본이나 동남아는 웬만하면 알아서 갈 수 있다. 그리고 가까운 여행지는 아무리 열심히 궁리해도 티가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기 힘든 여행지를 장기 여행으로 집중해보려고 한다. 또 여행에 대한 우리만의 규정을 만들려고 한다. 더 다양하고 밀도 있는 관계를 위함이다.”
-상품이나 규칙이 경쟁력일까?
“결국 경쟁력 있는 아이템은 사람이다. 장기 여행은 상품일 뿐이고. 함께 멀리가고 멀리 보는 여행을 지향한다. 예로 해외 한 달 살기 프로젝트를 우리가 한다면 더 어려운 숙제로 풀 수 있다.”
-어떻게 어렵게 풀려고 하는가?
“개인이 하면 어려운 걸 같이 하면 쉬울 수 있다. 예를 들어 발리는 쉬워도 뉴질랜드 한 달 살기는 좀 부담스럽지 않나? 그래서 그림 같은 별장을 미리 장기간 통임대 후 시기에 맞춰 초대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혼자나 소규모로 하면 너무 비싸고 쉽지 않지만 같이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뉴질랜드, 캄차카, 돌로미테, 알프스, 코카서스 등 여러 후보가 있다.”
<여행의 인물학에 대하여>
-‘여행 동아리’만의 모객 노하우가 있나?
“모객 시 삼분의 일 원칙을 고수 한다. 전체를 1이라고 할 때, 삼분의 일은 나와 함께 여행간 경험이 있는 사람, 삼분의 일은 안면만 있는 사람, 삼분의 일은 모르는 사람. 그 모르는 사람도 장기 여행 전 가벼운 국내 여행으로 관계 맺기를 시작한다.”
-여행을‘인물학’이라 했다. 그 밀도에 삼분의 일 법칙도 작용되는 거 같다.
“여행은‘설렘을 기획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여행은 때론 불친절 하다. 몇 가지만 정해주고 세부 계획은 없는 경우도 많다. 코스가 아예 없는 게 설렘을 줄 수도 있어서다. 그 설렘의 포인트는 사람이다. 함께 가는 사람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한 인물학 기반의 설렘이다.”
-미래의 여행 감독을 발굴하고 상품화 한다. 영업 기밀이 있나? 업계 질투는 없나?
“마인드가 중요하다. 어차피 모든 건 질투의 바다이지 않나. 나는 사고의 패턴을 조금 다르게 했다.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좋은 여행 프로그램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초대할 수 있다. 플랫폼이 어플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 이치다. 개별 어플의 성장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전체 플랫폼이 커질 테니까. 나는 성장할 수 있는 판을 더 키워주고 싶다.”
-체계적인 시스템이다. 눈 앞에 잘 그려지기도 하고.
“크게는 장기 여행 그림을 그리며 몇 가지 존을 만들었다. 북유럽 크루즈 씬, 이탈리아 씬, 코카서스와 그리스/터키 씬, 뉴질랜드와 남태평양 씬, 쿠바와 남미 씬, 캄차카와 시바리아 씬. 그렇게 월 단위의 씬을 만들려고 한다. 국내나 번개 여행은 그때그때 절묘하게 병행하면 된다.”
<기자로서의 고재열>
-기자로서의 삶도 궁금하다. 어떻게 기자가 되었나?
“고등학교 때‘우리들의 천국’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거기 배경이 신방과였다. 드라마를 보며 신방과를 가야겠다 생각했다. 대학에 간 뒤로는 당연히 기자를 하겠다 결심했고.”
-시사인 전에 어디에 있었나?
“시사저널에 있었고 파업을 빡세게 한 후, 우리 스스로 시사인을 창간했다. 나름 드라마틱한 시절이었다. 재밌는 건 파업 중간 퀴즈 대한민국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가 퀴즈 영웅이 되었다. 2천 만원 상금을 받았고, 그 돈의 일부가 시사인 창간 자금이 됐다.”
-기자라는 직업을 추천하는지?
“인생 3모작 시대라 생각한다. 3모작 시대에 3개의 직업을 해야 한다면 첫 번째 직업으로 나는 기자를 추천하는 편이다.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게 기자의 가장 큰 장점이다. 기자는 하면 할수록 학교를 연장해 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다음 직업을 옮길 때도 시야가 넓어지니 선택권이 많아질 테고. 물론 내가 두 번째 직업을 이렇게 빨리 가지게 될지는 몰랐다.”
-평생 기자만 할 줄 알았나?
“완주하려고 했다. 그런데 마치 계획이 있던 사람처럼 두 번째 직업으로 자연스레 이어갔다. 더 좋은 게 생겼기에 이전 직업을 놓을 수 있었다. 한편 어느 정도 기자로서 할 만큼 했다는 지점도 있었다. 내가 나와도 문제없겠구나 라는 생각도 있었고.”
-재미있는 게 일이 됐을 때의 두려움은 없을까?
“여행도 본격적으로 플랫폼화 되어야 일이 제대로 시작될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재미의 영역과는 별개일 수 있다. 사실 이제 베타 테스트 단계라 깊게 생각할 시점이 아닐 수도 있고. 한편으로 이건 심리전의 문제일수도 있다.‘아님 말고.’라는 정신이 기본적으로 있다.”
<여행 감독으로서 벌이와 미래>
-베타 테스트 운영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8명으로 지목한 여행 감독도 아직 해외 경험은 없다. 코카서스는 내가 감독이고 이탈리아 돌로미테는 여행 경력 많은 기자 선배를 감독화 해보려 한다. 현지 여행사 분들이 조감독이 될 예정이다. 일단 올해는 내가 다 함께 참여하려 한다. 그 외 캄차카와 쿠바 프로그램도 테스트 할 예정이고. 아마 올해는 계간으로 진행될 것 같지만, 몇 개나 할 수 있을지도 해봐야 안다.”
-베타 테스트 고객은 몇 명으로 진행되나?
“여행 동아리 기준, 300명으로 설정하고 있다. 100명은 여행 같이 한 사람, 100명은 안면만 있는 사람 100명은 아직은 모르는 사람. 모르는 100명도 무조건 오프라인을 통해 만날 예정이다. 내 타겟들은 아날로그함을 좋아하니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사실 관심을 보이는 분만 이미 600명이 넘는다. 그들이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지 데이터 베이스도 꾸준히 확보하는 중이다.”
-벌이는 어떤가? 추후 목표는 얼마 정도인가?
“사실 기자 월급 외에도 외부 활동으로 부수입을 병행해왔다. 강의나 외부 글 기고, 시사 프로그램 방송 출연 등. 그런데 올해는 여행 감독으로서의 일에 집중해야 할 거 같다. 여행과 관련해서는 올해가 베타 테스트 기간이라 큰 벌이는 없을 테고. 내년부터 기자 월급의 두 배 정도 버는 게 목표다. 두 배라고 정한 이유도 내 여행 비용이 필요하니까 잡은 기준이다.”
-사업이 잘 안될까 걱정 되는 건 없나? 사업은 늘 불안할텐데.
“버텨내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시스템이 예상대로 구축 될지 더뎌질지는 모르니까. 물론 지금까지 검증된 걸로 구축을 하는 거니 큰 걱정은 없지만, 그저 시간문제라고 본다.”
-반드시 지키고 싶은 여행 감독의 원칙이 있다면?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우선 여행은 효율성도 고려해야 하지만‘간섭하지 않은 결속력’도 필요하다.‘불편한 사치’라는 관점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새로운 경험은 불편함을 전제로 한다. 편안하게 뭔가를 얻을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선을 넘지 않은 배려’. 친밀감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고 선의가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선을 넘는 친절함은 사양한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플랫폼이니 여기서 각자 얻어 가면 된다. 나는 스케치만 해주고 색칠은 자기 스타일에 맞춰 하면 되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을 차근차근 들어보니 경쟁자가 없을 거 같다.
“당연하다. 우리는 플랫폼이니까. 네가 잘났으면 오히려 와서 너의 프로그램을 활용해보라는 주의다. 여기는 검증된 데이터 베이스를 가진 타겟들이 있으니까. 얼마나 활용할 여지가 많겠는가.”
-또 다른 블루오션 아닌가.
“그렇다고 당장 확장을 추구할 생각은 없다.”
-여행사와의 궁극적인 차이가 뭘까?
“결국 내가 도모할 프로젝트 유무의 차이다. 첫 번째로 세상에서 가장 큰 도서관, 캐리어 도서관 같은 거. 두 번째는 개마고원에서 캠핑카 500대와 함께 캠핑하기. 정주영 소떼 방북에 대한 오마주 성격이다. 남북 교류시대를 우리는 캠핑카로 알리고 싶다. 세 번째로 1948년 런던 올림픽 프로젝트의 재연. 우리나라가 최초로 참가했던 올림픽에 대한 여러 의미들을 새겨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섬 여행 크루즈 해보기. 언젠가 여의도 항이 생기면 이후 대한민국 모든 섬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이 4대 블록버스터, 언젠가 꼭 해보고 말 것이다.”
<인간 고재열의 취향과 잡담>
-인간 고재열은 어떤 사람인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이런 게 재밌는 사람이다. 사실 여행도 여러 문제가 있지만 나에게는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상위에 큰 그림을 그려두면 그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왜 일을 한다고 생각하나?
“일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여행을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분들에게 자기만의 로드맵을 만들어 주고 싶다. 큰 그림을 같이 고민하고 싶다. 나도 재미있는 이 일을 다들 재미있게 참여 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가능성도 찾고. 내가 일을 하는 이유다.”
-앞으로의 꿈은 뭔가?
“더 어려운 숙제를 푸는 것이다. 나의 죽음을 실고 갈 크루즈 여행을 구상한다던지 하는 것. 은하철도 999 같은 크루즈를 기획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죽음도 여행을 하다 맞이하고 싶다.”
-노후 걱정 있나?
“아내가 선생님인데 연금을 따로 쓰자고 해서 걱정이다. (웃음) 사냥을 할 때 실패하면 위기가 찾아오듯 리스크는 언제나 상주해 있다. 오히려 큰 리스크를 감당 하자는 게 선택이 됐다.”
-인생 삼모작 할 거라 했는데, 세 번째 직업은 뭘 예상하나?
“세 번째 직업은, 플랫폼이 안정화 된 후 순수 여행 감독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여행을 나랑 잘 맞는 사람하고만 하는 것. 좀 더 개인의 영역에 집중하고 싶다.”
-직업 정체성을 찾지 못한 분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지금 와서 역으로 생각하니, 나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싶었다. 그간 나는 재미있는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와 보니 그것들이 다 밑 작업물이 되었다. 90년대 학번들을 위한 여행 동아리도 재미로 시작한 구상이었다. 어쩌다 보니 사업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경험의 조합이 그 시작이고, 그 경험치가 사업의 밑천이 되었다. 사람과 상황이 달라지면 차이점도 있겠지만, 예측할 여유가 생긴다. 그런 관점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면 각자만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원부연. 서울경제신문 라이프점프 객원기자. 전 광고 기획자에서 음주문화공간 기획자로 창직 후 술집, 극장, 살롱 등 서로 다른 9개의 공간을 런칭했다. <합니다, 독립술집>, <회사 다닐 때보다 괜찮습니다.>, <퇴사 말고, 사이드잡> 세 권의 책을 쓴 작가로도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