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온 국민이 몸살을 앓고 있다. 감염자는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힘들고 의료인은 감염자를 치료하느라 힘들고 일반 국민도 감염 확산을 방지하느라 기본적인 생활조차 힘들다. 이 가운데 의료인의 상황이 특이하다. 보통 사람은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게끔 가급적 감염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려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다. 하지만 구급대원을 포함해서 의료인은 아픈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곳으로 달려가야 하는 운명이다.
신천지예수교로 인해 코로나19가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다수의 감염자를 낳고 있다. 초유의 일이 벌어지다 보니 당연히 모든 것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감염자를 돌볼 의료인도 부족하고 의료 물자도 언제 바닥이 날지 몰라 걱정되기 마련이다. 정부와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다른 지역의 의료인들에게 도움을 청하자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왔다. 의료진은 방호복을 입고 진료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이중 삼중으로 힘들다. 방호복을 입으니 땀이 나서 온몸이 흥건히 젖은 상태로 일하기도 하고 마스크에 코가 눌려서 상처가 나기도 한다. 잠깐 휴식을 취하느라 방호복을 입고 의자에 기댄 모습과 코에 반창고를 붙인 모습이 사진으로 알려지면서 의료진의 노고를 여실히 실감하게 됐다.
하지만 의료진의 헌신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마스크와 관련해 볼썽사나운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마스크 구입이 어려워지자 평소보다 비싼 가격에 마스크를 대량으로 구입한 뒤 더 비싼 가격으로 되팔기도 하고, 경로당에 보관 중인 마스크를 훔치기도 하고, 정부의 단속이 시작되자 판로를 찾지 못해 창고에 몇 십만 장 또는 몇 백만 장의 마스크를 보관하는 일도 있다. 심지어 안전성이 검증되지도 않은 불량 마스크를 만들어 시중에 내다 팔기도 했다. 온 국민이 마스크를 구하느라 판매처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고, 그러고도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한 장을 며칠씩 재활용하는 와중에 추하게 제 잇속만을 차리려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의료인의 헌신과 일부 사람의 잇속 차리기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러한 대비는 전국시대에 활약한 묵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여러 사람이 불행을 겪을 때 서로 돕기보다 이 틈을 이용해 제 잇속을 차리려고 하기 때문에 사람 사이가 나빠지고 결국 공동체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진다고 보았다. 그는 자신의 잇속만을 차리는 삶을 별애(別愛)로 보고, 공동체의 상황을 전반적으로 고려해 타인을 돕는 삶을 겸애(兼愛)로 보았다. 사람이 별애에 따라 행동하기만 하면 사회의 위기를 이용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끊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묵자는 겸에 따라 별을 바꾸자는 겸이역별(兼以易別)을 주장했다. 예컨대 마스크가 부족한 상황에서 너도나도 사려고 하면 마스크를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하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때 어떤 사람이 마스크를 미리 구입해서 약간의 여유가 있다면 마스크를 살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마스크 부족 현상을 극복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빨라질 수가 있다. 실제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러한 제안을 하는 사람이 있다.
묵자는 겸애에 따른 삶을 확산시키기 위해 무진장 노력을 했다. 이 때문에 묵자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맹자마저도 “묵자는 겸애를 주장해 머리 꼭대기부터 발꿈치까지 다 닳아 없어지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한다(묵자겸애·墨子兼愛 , 마정방종·摩頂放踵, 이천하위지·利天下爲之)”고 인정했다. 여기서 마정방종은 몸이 바스러지도록 일해 기진맥진하니 자신이 닳아 없어진다는 느낌을 겪는다는 것이다. 최근에 전국 각지에서 감염자를 돌보기 위해 대구와 경북으로 달려간 모든 사람의 노고를 표현한다면 바로 마정방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코로나19는 끝나고 싶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하나의 세계적 텍스트가 됐다. 현재 우리는 코로나19의 검진키트를 개발·양산해 그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신속한 확진 판정과 체계적인 방역이라는 세계적 텍스트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다. 앞으로도 추하게 잇속을 차리는 일보다는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서로 돕는 마정방종의 인류애를 확인하는 글을 텍스트에 많이 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