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미성년자 등의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해 온 이른바 ‘박사방’ 운영자들이 공익근무요원들을 통해 피해 여성들의 신상을 캐낸 것으로 드러났다.
20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에 따르면 일명 ‘박사’로 알려진 운영자 20대 조모씨는 공범들과 함께 미성년자 등 수십 명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찍게 한 뒤 이를 판매해 수억원의 범죄수익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조씨의 범행에 따른 피해자는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미성년자 16명을 포함해 74명에 달한다. 추가 수사과정에서 피해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아르바이트 등을 미끼로 피해자들을 유인해 얼굴이 나오는 나체사진을 받아낸 뒤 이를 빌미로 성 착취물을 찍도록 협박했다. 조씨는 피해자들을 ‘노예’로 지칭하면서 이들에게 얻은 성 착취물들을 텔레그램 유료대화방을 통해 다수에게 팔아넘겼다. 조씨는 구청과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공익근무요원들을 통해 피해여성과 박사방 유료회원들의 신상을 캐낸 뒤 이를 협박과 강요의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또 피해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물 유포 등의 범죄에 가담토록 한 정황도 드러났다. 실제로 검거된 피의자 가운데는 박사방의 피해자였다가 이후 공범으로 둔갑한 경우도 있었다. 조씨는 자신의 신상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공범들과 일절 접촉하지 않은 채 텔레그램으로만 범행을 지시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공범 중 조씨를 직접 보거나 신상을 아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조씨는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는 ‘맛보기’ 대화방을 개설한 뒤 일정금액의 가상화폐를 내면 입장할 수 있는 3단계의 유료대화방을 운영하며 회원들을 끌어모았다. 1단계는 20만∼25만원, 2단계는 70만원, 3단계는 150만원 안팎의 가상화폐를 ‘후원금’ 명목으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대화방 참여자 수가 최대 1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조씨는 박사방에 적극 참여해온 회원들을 ‘직원’으로 부르며 조직적으로 범죄에 가담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공범에게는 자금세탁과 성 착취물 유포, 대화방 운영 등을 맡겼고 심지어 피해자들을 성폭행하게 하기도 했다. 경찰은 조씨의 공범 13명을 검거해 그중 4명을 구속상태로 검찰에 넘겼으며, 나머지 9명에 대해서는 수사 중이다. 피의자들의 나이는 평균 24∼25세 정도로, 이들 중에는 미성년자도 여럿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조씨의 주거지에서 현금 약 1억3,000만원을 압수하고 나머지 범죄수익을 추적 중이다. 또 박사방 유료회원들도 추적해 검거할 방침이다.
경찰은 다음 주초 ‘신상정보 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조씨의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경찰 내부위원 3명과 외부위원 4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되며 다수결로 안건을 의결한다. 박사방 운영자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이날 현재 26만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신상공개가 결정되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피의자 신상공개가 이뤄지는 첫 사례가 된다.
앞서 지난해 9월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수십 차례의 압수수색, 폐쇄회로(CC)TV 분석, 국제공조 수사, 가상화폐 추적 등을 통해 조씨의 신원을 특정하고 이달 16일 체포했다. 조씨는 경찰 조사 중 유치장에서 자해소동을 벌였지만 현재는 범행을 시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7가지 혐의로 19일 밤 조씨를 구속했다.
성 착취물을 공유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은 일명 ‘n번방’이 시초격으로, 이후 이와 유사한 대화방들이 만들어졌다. 조씨가 운영한 박사방은 지난해 9월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