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뒤 2조달러(약 2,440조원)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계획에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공약(1조달러)으로 내세웠고 지난 2018년에도 1조5,000억달러 규모로 추진했다가 불발된 인프라 투자계획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펠로시 의장이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자 화가 난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추가 협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끝날 뻔했던 인프라 투자법안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커졌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2조2,000억달러의 슈퍼 부양책에 서명한 지 나흘 만이다. 3월3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인 방안이나 세부내역을 밝히지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지난해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던 2,870억달러 규모의 고속도로 건설법안을 기초로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인프라 관련 트윗을 올리기 직전 공화당 서열 3위이면서 환경·공공사업위원회 위원장인 존 배러소 상원의원(와이오밍주)에게 전화했다. 이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도로와 다리·터널·항구 등을 개선하는 2조달러짜리 부양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미국의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피해가 감기 수준이라던 트럼프 대통령의 초기 장담과 달리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2·4분기 미국 성장률이 -34%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3·4분기에 19%로 반등할 수 있다고 봤지만 실업률은 최고 15%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토매틱데이터프로세싱(ADP)은 1일 지난달 초부터 12일까지 민간 부문의 고용이 2만7,000건 감소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ADP의 고용 지표가 감소세를 보인 것은 2017년 9월 이후 처음이다.
법안 통과의 키를 쥔 민주당은 큰 틀에서 찬성, 일부 각론에서는 반대다. 앞서 펠로시 의장은 “다음 법안에는 광대역망과 상수도 정비가 지원에 포함되기 바란다”며 “인프라 건설은 즉시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민주당은 의료휴가와 감염 위험에 처한 사람의 보호, 금융시장 불안정으로 손실을 본 연기금 지원 등이 포함되기를 원한다.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큰 정부를 선호하는데다 지난해에도 1차로 인프라 투자에 합의한 만큼 지출항목 조정이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은 투자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다소 유보적이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3차 부양책의 효과를 봐야 한다”고 전했다. 증세 우려 때문이다. 연방정부의 재정적자가 최대 6조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예상이 제기돼 추가 부양책이 나올 경우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양당 의원들은 인프라 투자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어떻게 재원을 조달할지, 어떤 내용이 법안에 포함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며 “재원조달 방안 중 하나는 휘발유세 인상인데 공화당원들은 세금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가 빠르게 퍼지는 상황에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건설·토목사업을 시행하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WP는 “근로자들에게 가능하면 집에 머물면서 개인접촉을 피하라고 하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은 건설 프로젝트에 좋지 않은 시기”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연준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추가 달러 공급방안을 내놓았다. 레포기구(FIMA Repo Facility)를 설치해 뉴욕연방준비은행 계좌를 가진 외국 중앙은행과 국제통화기구에 미국 국채를 담보로 달러화를 대출한다. 하루짜리(오버나이트) 거래지만 연장이 가능하다. 6일부터 최소 6개월 동안 가동되며 연준 초과지급준비금이자율(IOER)에 0.25%포인트의 추가 금리가 적용된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