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상표와 디자인, 뜻밖의 만남

박원주 특허청장




얼마 전 말이 그려진 둥근 캔을 편의점에서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다가섰는데 대문짝만하게 구두약이 아니라고 적혀 있었다. 립밤·핸드크림·풋크림으로 구성된 종합선물세트인데 인기가 좋단다. 순간 아버지의 구두를 닦고 용돈을 받곤 했던 필자의 어린 시절 기억과 겹쳐지며 딱히 내게 쓸모가 있지 않은데도 살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특별한 날이 돼야 주고받는 종합선물세트라니 구성 또한 구매욕구를 자극한다.

최근 구두약과 화장품같이 관련 있을 것 같지 않은 분야에서의 협업이 눈에 띈다. 곰이 그려진 밀가루 상표가 포대 같은 패딩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팩소주 상표가 가방으로 판매되면서 주목을 끌었다. 빨간 내복을 극장 내 의자 시트에 입혀 속옷 브랜드와 극장이 함께 화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처음 보는 새로운 제품인데 어딘가 익숙하다.


자신의 기억과 경험이 녹아 있는 상표가 예상치 못한 제품들과 결합해 새로운 디자인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러한 협업 디자인은 슬며시 웃음을 자아내고 신선하기까지 하다. ‘새로움’은 신상품이 가져야 할 필수 항목이다. 협업 제품의 힘은 이런 새로움에 각자가 갖고 있는 기억의 스펙트럼을 연결하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일요일 점심 자주 등장하던 수제비 같은 패딩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 동네 시장을 떠올리게 하는 패딩이 될 것이다. 하나의 신제품이지만 수만개의 다른 제품으로 변신하는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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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디자인 제품이 추억을 가진 소비자에게만 인기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탄생해 내게도, 딱히 그 상표에 대한 추억이 없는 내 아이에게도 매력을 발한다. 협업을 통해 이전의 상품에도 관심이 쏠리게 되고 이전 상품과는 차별되는 협업 디자인만의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우리 기업 상표가 디자이너·예술가들과 이러한 의외의 만남을 많이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독자적인 상표와 디자인 아이디어만으로는 급격하게 변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붙잡는 것이 참 어렵다. 협업 디자인이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상표의 인지도와 디자인 아이디어를 결합해 고객층을 확장하고 서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요즘은 여러 가지 이유로 참 어렵다. 회사에서 동료와의 의사소통도 어렵고 환경문제도 어렵다. 봄의 한가운데서 바이러스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니 웃는 얼굴을 맘껏 보여줄 수도 없다. 과감하리만큼 예상치 못한 분야들이 서로 손잡아 이런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되면 좋겠다. 적어도 협업을 위한 정서적 거리만큼은 좁혀지길 바란다. 협업이야말로 지금과 같은 시기에 필요한 철학이자 전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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