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003490)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발생한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포함한 2조2,000억원 규모의 자구책을 내놓는다. 이 자구책에는 자산유동화증권(ABS), 영구채 발행 등 정부의 지원금을 차입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대한항공이 추진하는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에 다른 주주들의 참여 유인이 없어 대규모의 실권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아울러 대한항공이 내놓은 자구책이 기존과 달라진 점이 없는데다 유휴자산의 매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13일 대한항공은 이사회를 열고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정부 자금 지원안의 실행을 결의했다. 이번 유상증자는 주주 우선 배정 후 실권주를 일반 공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유상증자를 통해 새로 발행되는 주식 수는 7,937만주로 주당 발행가격은 1만2,600원이다. 신주 상장은 오는 7월29일 이뤄진다. ★관련기사 29면
대한항공은 한진칼(180640)이 보통주 29.96%를 가진 최대주주다. 국민연금은 보유지분이 8.94%로 단일주주로서는 2대 주주다. 정석인하학원(2.73%), 노르웨이 중앙은행인 노지스뱅크(1.62%), 타임폴리오자산운용(0.83%), 뱅가드 펀드(0.81%), 정석물류학술재단(0.42%), 일우재단(0.2%), 최은영 한진해운홀딩스 회장(0.01%) 등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주주 우선 배정 방식으로 유상증자가 진행될 경우 이들이 물량을 배정받게 된다.
재계에서는 이번 유상증자에 한진칼 등이 어떻게 참여할지 주목하고 있다. 현재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을 비롯해 주요 주주들은 현금 여력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다. 정석인하학원은 수년째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고 정석물류학술재단과 일우재단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또 코로나19 사태에 노지스뱅크나 뱅가드 펀드 등이 추가로 지분을 사들일 가능성도 희박하다.
주요 주주들이 대한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대규모의 실권이 발생해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2016년 자본 확충을 목표로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시행했으나 우리사주조합 청약률 0% 등 주요 주주들이 청약에 불참하며 대규모의 실권이 발생해 자금조달에 악영향을 끼친 바 있다. 대한항공 역시 최악의 경우 최대주주인 한진칼만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자금마련이 예상보다 힘들어질 수도 있는 셈이다. 한진칼은 자산매각, 지분 담보대출, 부동산대출,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는 안을 고심하고 있다.
아울러 대한항공은 이날 이사회에서 국책은행에 지원받는 1조2,000억원 규모의 차입 실행 방안을 논의했다. 대한항공은 항공화물 매출채권을 담보로 7,000억원 규모의 ABS와 주식전환권이 있는 3,000억원 규모의 영구채권 발행 등을 결의했고 2,000억원의 자산담보부 차입도 진행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대한항공의 자구책과 관련해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매각이 진행 중인 유휴자산들이 인수자를 찾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잠재적인 매물로 거론되는 자산들은 코로나19 사태로 가치가 하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의 자구안에는 사업부 매각 등 새로운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됐으나 제외됐다. 이날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이사회에서는 사업부 매각과 관련해 논의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항공업에 조원 단위 자금투입 계획을 밝혔고 추가적인 자금지원이 예상된다”며 “이번 자구안은 정부의 자금을 받은 데 대해 형식적으로 내놓은 것에 불과해 구체적인 자구안은 추가 자금지원 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항공은 코로나19로 인해 악화된 경영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자구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전 임원이 최대 50% 급여를 반납한 데 이어 직원의 70%가 6개월간 순환 휴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왕산마리나 운영사인 ㈜왕산레저개발 지분 등 자산을 매각하고 있으며 사업재편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도 추진 중이다.
/박시진·서종갑기자 see120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