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자유’다. 두 다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동력으로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자유를 인간에게 선사한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홈(Home)’은 대세다. 감염 위험 없이 집에서 여가를 즐기는 홈족(Home族)이 등장했고 ‘홈코노미’ 관련 산업들도 뜨고 있다. 안락하고 편안한 나만의 공간에서 휴식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차를 타고 떠나는 자유를 누리려는 욕망과 나만의 공간에서 안락함을 즐기고 싶은 욕구. 어찌 보면 충돌하는 두 여가의 모습이 만난 트렌드가 ‘차박(車泊)’이다. 차를 타고 떠난 뒤 차에서 잔다는 뜻의 차박. 힘든 일상 속에서 별다른 준비 없이 가볍게 떠나고 싶을 때, 몸만 차에 싣고 운전대를 잡으면 차는 내 한 몸을 누일 공간 또한 돼 준다.
코로나19가 차박의 가치를 더욱 높인 것은 확실하다. 공유경제의 시초로 극찬받던 공유숙박업체 에어비앤비마저 위기에 빠뜨린 ‘언택트’의 시기. 온전히 나만의 공간에서 낮과 밤을 보낼 수 있는 차박 인구는 빠르게 늘고 있다. 포털사이트의 차박 커뮤니티 회원 수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3만7,000명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11만7,000명에 이른다. 최근 TV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의 차박이 소개된 영향도 크다. 위메프에 따르면 지난 4월 한 달 간 차박 용품 매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트렁크에 깔고 눕는 차박 매트의 매출은 636% 증가했고 차량 트렁크와 연결할 수 있는 도킹 텐트 매출은 608% 뛰었다. 차박 전용 텐트는 133% 올랐다. “야외 활동에서도 다른 사람과 접촉이 적은 활동을 선호하는 분위기”라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소형과 대형을 가리지 않고 좀 더 넓은 공간을 선사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시장의 경쟁이 치열한 것도 자연스럽다. 승차감이 다소 떨어지는 SUV의 인기가 높다는 건 그만큼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선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SUV 구입을 고려하는 소비자들은 차량의 트렁크 크기도 꼼꼼하게 따져보는 게 좋다. 국내 완성차 5사의 소형 SUV의 경우 르노삼성 ‘XM3’가 기본 513ℓ로 가장 큰 용량을 자랑한다. 기아 ‘셀토스’(498ℓ)가 그 뒤를 잇고, 이후는 GM ‘트레일블레이저’(460ℓ)와 쌍용 ‘티볼리’(427ℓ), 현대 ‘코나’(360ℓ) 순이다. 대형의 경우 GM ‘트래버스’(최대 2,780ℓ)가 가장 크고 현대 ‘팰리세이드’(2,447ℓ)가 뒤를 잇는다.
2열과 3열에 조명이나 각종 캠핑 아이템들을 사용할 수 있는 소켓, USB 단자들이 많이 설치돼 있는 차량이 차박을 하기엔 아무래도 편리하다. 많은 차박 애호가들이 캠핑용 ‘파워뱅크’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초보자의 경우 설치가 쉽지는 않다. 전기 공급 측면에 있어선 차량 안에 이미 거대한 배터리가 들어 앉아있는 전기차가 좋다.
차박을 여유 있게 즐기려면 다소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잠자리가 편안해야 한다. 차량의 뒷열 시트를 접으면 잠잘 공간이 생기는데, 보통 시트의 단차 때문에 경사가 생기거나 3열까지 있는 차량의 경우 2열과 3열 사이 공간에 공백이 생긴다. 이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에어매트 등 각종 매트다. 완전히 평평하지는 않아도 차 시트 뒷면에 바로 등을 대고 눕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푹신한 잠자리를 위해선 필수 아이템이다.
차에서 숙박을 하려면 시동을 꺼야 하는데 보통 산이나 강가에 위치한 캠핑장 특성상 쌀쌀한 온도가 걱정이다. 낮에는 다소 덥더라도 침낭이나 두꺼운 이불을 꼭 가져가야 한다. 시동을 꺼도 가동 가능한 무시동 히터도 있지만 가격이 수십 만원 대로 제법 비싸고, 설치가 까다로운 게 단점이다. 또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대비해 잘 때는 창문을 약간 열어놓는 게 좋다. 차를 향해 날아드는 벌레들을 막으려면 차량용 방충망도 꼭 챙겨야 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들도 시중에 출시되고 있다. 잠을 잘 때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창문 가리개가 대표적. 낮에는 빛을 차단하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 깜깜한 새벽 캠핑장에서 화장실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기 싫다면 휴대용 변기도 챙겨갈 만 하다. 다만 사용법이 다소 복잡하고 청소도 까다롭다. 트렁크에 연결한 천막 또는 텐트 개념인 도킹텐트는 차박의 공간을 쉽게 확장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차박은 두 다리를 대신해줄 뿐 아니라 등을 대고 누울 자리가 돼 주는 자신의 자동차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차박에 빠진 이들은 숙박을 예약하거나, 대단한 준비를 할 필요 없이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걸 차박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미니멀리즘 캠핑’이랄까. 운이 좋으면 잠들기 전 파노라마 썬루프를 통해 반짝이는 별을 볼 수도 있다. 차 안에선 잠자리의 불편함마저 낭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