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여야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고위공직자수사처의 오는 7월 출범과 신속한 3차 추가경정예산 처리를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 참석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협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자주 만나자”고 손을 내밀었다.
주 원내대표는 위기 국면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화답하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확장재정’ 드라이브와 탈원전정책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주 원내대표는 원전생태계가 무너지는 부작용을 언급하며 “탈원전 방침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주 원내대표는 이날 정오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났다. 상춘재는 주로 외빈 접견이 이뤄지는 곳으로 청와대 경내에 최초로 건립된 전통한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지난 2017년 방한 당시 상춘재에서 문 대통령과 환담했다. 이날 회동은 당초 1시간 30분가량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대화가 길어지며 2시간36분 만에 종료됐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무거운 주제들이 대화 테이블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현재의 위기국면을 ‘세계적 대공황 이후 처음’이라고 규정하며 21대 국회에서 3차 추경과 고용 관련 법안들을 신속히 처리해줄 것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또 “공수처의 7월 출범에 차질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회가 법에 정해진 날짜에 정상적인 방식으로 개원을 못해왔다”며 “시작이 반으로 두 원내대표가 역량을 잘 발휘해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여야 원내대표와의 잦은 만남을 강조하며 “앞으로 정기적으로 만나 현안이 없더라도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의 말에 상당 부분 공감하면서도 정부의 확장재정 움직임에 대해서는 우려의 뜻을 분명히 전했다. 주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국가부채 비율이 40%를 넘어서면 어렵다고 주장했던 점을 환기시키며 “3차 추경까지 되면 국가부채 비율이 46.5%를 넘어서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주고 오히려 더 큰 비용이 지출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그러면서 경제를 살릴 방안으로 ‘규제 완화’와 ‘노동유연성 확보’를 강조했다.
주 원내대표는 아울러 탈원전정책에 대해 “신한울 원전 건설을 안 하고 원전생태계가 깨지면 수출과 부품수급 등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지역의 어려움을 고려해서라도 에너지 전환정책을 연착륙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유럽의 다른 나라처럼 칼 같은 탈원전이 아니다. 70년이 걸리는 과정”이라면서 “설비를 봐도 과잉상태다. 에너지 공급이 끄떡없어 전력예비율이 30%를 넘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중장기적 탈원전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다만 “두산중공업의 원전 비중이 13%라고 알고 있는데 지원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인 윤미향 당선자 문제에 대해서는 야당과 청와대의 말이 엇갈렸다. 주 원내대표는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며 “보상과 관련한 할머니들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윤미향 사건이 나왔다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그러나 “윤미향 당선자의 이름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주 원내대표는 또 “정무장관이 있으면 야당이 만나기 편하다”면서 정무장관 신설을 제안했고, 문 대통령은 이를 검토해보라고 노영민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이명박·박근혜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는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상견례 형태로 만난 자리에서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주제를 피해간 것으로 해석된다.
화창한 날씨 속 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는 상춘재 앞에서 만나 덕담을 주고받았다. 문 대통령은 여민관에서 집무를 마치고 상춘재로 걸어가 기다리고 있던 두 원내대표를 반갑게 맞았다. 두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넸고 이어 주 원내대표가 “날씨가 너무 좋다”고 운을 떼자 문 대통령은 “예, 반짝반짝”이라고 화답했다.
‘여당 독식’ 논란이 불거진 상임위원장 문제를 둘러싸고는 가벼운 신경전도 벌어졌다. 김 원내대표가 “오늘 대화도 날씨만큼 좋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드러내자 주 원내대표는 “김 대표님이 잘해주시면 술술 넘어가고 다 가져간다 이런 말 하면…”이라고 해 현장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협치를 거듭 강조하면서 “여야 간 타협점을 찾지 못했던 문제들은 이제 한 페이지를 넘겼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강 대변인은 “일각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한다든지 하는 서로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이 있었다는 것에 대한 언급이었다”고 전했다.
/윤홍우·김혜린기자 seoulbir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