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업계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음향 엔지니어 경력 20년 차 선배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이곳에서 성공하려면 어떡해야 되는 거냐고. 그러자 기대에 비해 초라한 답이 돌아왔다. “그냥 살아남으면 돼. 그게 다야.” 시시하게 그게 뭐야. (중략) ‘살아남는다’는 말은 꾸역꾸역 버틴다는 말로 들렸다. ‘꾸역꾸역’이라는 표현을 붙일 만큼 구차하고 초라한 모습이 떠오르는 말이었다. 사람 많은 배에 억지로 몸을 욱여넣고 비루하게 항해를 하는 사람이 상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말은 묘하게도, 5년 차, 10년 차가 될 때마다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살아남았고’, 그러기 위해 많은 것들을 했다. ‘살아남는다’는 말은 단순히 존재감 없이 그럭저럭 발을 걸치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살아남아보며 깨달았다.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2020년 위즈덤하우스 펴냄)
박효신, 아이유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히트곡 노랫말을 쓴 작사가 김이나. 화려해 보이는 업을 지닌 그의 마음사전엔 의외로 ‘살아남다’라는 단어가 꼿꼿이 박혀 있다. 유행에 민감한 대중가요판에서 일하던 김작가는 어느 날 자신의 몸과 함께 언어도 나이들어가는 게 아닐까 고민한다. 하지만 그는 ‘올드함’을 회피하거나 부정하려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언어가 인생을 따라 나이들어간다면 ‘올드’한 사람만이 써낼 수 있는 가사도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즈음 이선희의 노래 <그중에 그대를 만나>를 작사하며 ‘올드함’이란 깊이로 치환되고 완성될 수 있는 것임을 스스로 입증해낸다. 최근 유산슬, 임영웅 등의 트로트 가수들과도 협업한 그는 연령대와 장르까지 초월한 더 넓고 깊은 노랫말로 대중작사가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우직하게 시간을 쌓아올려 끝끝내 자기 업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주는 감동이 있다. 마치 노사연의 노래 <바램>의 가사 한 대목처럼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며 살아가고 살아남는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이연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