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공감]인생이 자꾸만 멍들고 시들해질 때

칭다오에 사는 친구가 엄마한테 해준 얘긴데, 누군가 사과 한 상자를 보내와서 열어보니 대부분 신선하고 새파란 것들이었지만 몇 개는 이미 변색되기 시작했더라는 거야. 엄마 친구는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조만간 썩을 사과를 덥석 집어들었는데, 열일곱 살 난 친구의 아들은 곧장 가장 새파란 것을 집어 아삭아삭 베어먹더라는 거야. 엄마가 아들에게 다급하게 말했지. “어머나, 안 좋은 것부터 먹어야지. 내일이면 못 먹게 될 텐데.” 아들이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어. “하지만 내일이면 그만큼 좋은 것도 조금씩 상할 거예요. 결과적으로 엄마는 언제나 안 좋은 것만 뒤쫓게 되는 거고, 그럼 엄마는 영원히 싱싱한 사과는 못 먹게 될걸요. 왜 가장 좋은 것을 먼저 누리려 하지 않죠?” (룽잉타이·안드레아, ‘사랑하는 안드레아’, 2015년 양철북 펴냄)


누구의 삶이나 겉보기엔 반들반들해 보이지만, 속을 헤쳐보면 약간씩 시들고 맛이 간 부분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멍든 것부터 황급히 해치우려 하지만, 어떤 이는 지금 이 순간 내가 맛볼 수 있는 가장 싱싱하고 맛있는 사과를 고른다. 무엇이 더 현명하고 올바른 선택인지는 알 수 없다. 변색된 사과부터 골라먹는 이는 오래, 끝까지 사과상자를 비울 확률이 높지만, 정작 가장 싱싱한 사과의 맛은 끝내 모른 채 상자 밑바닥을 보게 될 수 있다. 반면 싱싱한 사과만 골라먹는 이는 처음엔 꿀맛이지만, 어느 날 깨끗하고 온전한 사과가 하나도 없음에 실망하며 썩은 과일상자를 통째로 내다버릴지 모른다.



이 책은 대만의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작가 룽잉타이가 열여덟 살 아들과 나눈 서간집이다. 모자는 이 편지를 통해 서로에게서 전혀 다른 인생의 선택지와 태도를 배워간다. 인생에는 멍들고 마음 상하는 날과 싱싱하고 힘찬 날이 뒤섞여 있다. 오늘의 사과를 어떤 것으로 고를지는 당신의 자유이지만, 항상 같은 사과만 고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문학동네 편집팀장 이연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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