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6월 8일 아침 지중해, 미 해군 정보 수집함 리버티(USS LIBERTY). 아침 7시부터 리버티함 상공에 이스라엘 정찰기들이 날아들었다. 제3차 중동전(6일 전쟁) 발발(6월 5일) 직전 아프리카 동해안에서 지중해로 이동한 리버티함의 주 임무는 감청. 이집트와 이스라엘 근처의 공해 상에서 각종 통신정보를 수집, 분별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이집트 해안 가까운 공해에서 시속 5노트를 운항 중이던 리버티호 장병들은 이스라엘 정찰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미국이 중립을 선언한데다 누가 감히 미 해군을 공격할 수 있느냐는 생각에서다.
리버티호는 배수량 1만t에 이르는 대형함정이지만 무장은 12.7㎜ 기관총 4정이 전부. 중동전 전운이 짙어져 리버티호 함장이 호위함정을 붙여 달라고 요청했을 때도 미 6함대는 이렇게 답했다. ‘공해 상의 미 해군을 누가 공격한다는 말인가. 호위함정은 필요 없다.’ 이스라엘 정찰기들은 연달아 리버티호에 날아왔다. 거리가 가까워져 조종사와 수병들이 서로에게 손을 흔들기도 했다. 오후 2시까지 이스라엘 정찰기와 전투기들이 모두 6차례나 리버티호 상공을 선회하고 돌아갔다.
오후 1시 57분에 나타난 이스라엘 공군의 프랑스제 미라지Ⅲ 전투기 두 대가 갑자기 공격을 퍼부었다. 30㎜ 기관포와 로켓을 맞은 리버티호에서 8명이 즉사하고 75명이 부상당했다. 미라지Ⅲ 전투기가 적재 탄약을 소진하고 돌아간 뒤에는 프랑스제 슈퍼 미스텔 Ⅳ 전투기 두 대가 네이팜탄까지 떨어뜨렸다. 외형이 미그기와 비슷한 이 전투기의 공격을 받은 리버티호는 구조 신호를 보냈다. 강력한 전파 방해를 뚫고 ‘정체불명의 적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 지원 바란다’는 급전을 날린 직후인 오후 2시 35분께 이스라엘 어뢰정 3척이 나타나 기관총을 퍼부으며 이탈리아제 어뢰 5발을 쐈다.
선체 중앙에 명중한 어뢰 한 발은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다. 최종 인명 피해는 사망 34명에 부상 171명. 2차 대전 이후 어떤 나라도 미 해군에 이만한 피해를 입힌 적이 없건만 린드 존슨 대통령은 사망자를 10명이라고 줄여 발표했다. 리버티호의 구조요청을 받고 긴급발진했던 팬텀 전폭기들도 이스라엘 어뢰정을 응징하러 날아가던 도중 대통령과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명령으로 되돌아왔다. 이스라엘은 실수라며 세 차례에 걸쳐 보상금 1,287만 달러를 냈을 뿐이다. ‘미군의 안전보다 이스라엘이 더 중요한가’라는 불만조차 국가 기밀 속에 갇혔다. 의문이 든다. 이스라엘의 행위는 어떤 짓도 용납되는지.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