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그룹 버글스는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제목의 노래를 발표했다. 리듬은 경쾌했지만 라디오 시대가 끝나고 비디오 전성기가 열린다는 서늘한 노래 제목은 당시 라디오 종사자들을 한숨 쉬게 만들었다. 라디오처럼 직접 지목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공포를 느낀 집단은 또 있었다. 출판·인쇄물도 라디오와 비슷한 운명에 처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활자만 가득한 책도 영상의 그늘에 가려 점차 외면당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내다봤다. 인류 수천 년 지식과 지혜의 전수 수단인 책이 사라질 지 모른다는 극단적 비관도 나왔다
하지만 그로부터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책은 ‘죽지 않았다’. 인터넷, 모바일을 통해 하루 24시간 내내 새롭고 화려한 콘텐츠가 쏟아지지만 책은 여전히 건재하다.
30일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출판사 70곳의 매출액은 5조3,836억원으로 전년 대비 7.0%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4,685억원으로 54.5% 증가했다.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 6곳의 매출도 1조8,817억원을 기록하며 같은 기간 3.1% 늘었다. 영업이익은 380억 원으로 33.9% 증가했다.
통계청 지표에서도 출판업계의 성장세가 확인된다. 2019년 서적출판업 생산지수는 96.8로 전년 대비 7.8% 상승했다. 시대가 급변하고 있지만 책은 많이 제작되고, 사고 팔리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독서율이 예년만 못한 건 사실이다. 올 들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9 국민 독서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 독서율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성인 종이책 독서율은 52.1%로 2017년에 비해 7.8% 포인트 감소했다. 조금씩 늘고 있는 전자책과 오디북 독서율을 반영한 전체 독서율은 55.7%로 집계됐다.
흥미로운 점은 전반적인 독서율 감소세 속에서도 책을 읽는 사람은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독서에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국민 독서 실태 조사 결과에서 성인의 독서 시간을 살펴보면 독서자(책 읽는 사람)는 2017년 평일에 36.7분 동안 책을 읽었지만 2019년에는 독서 시간이 89.4분으로 늘었다. 휴일의 독서 시간도 2017년에 47.9분에서 2019년에는 76분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체부 관계자는 “성인 독서자의 독서시간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며 “이 덕분에 전체 성인 독서율과 독서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독서 시간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독서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멀티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도 오히려 책에 더 집중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세상의 혁신과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도 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를 비롯해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등 혁신기업의 창업자들은 오늘날 책을 고루한 물건으로 만든 주역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는 독서가들로 잘 알려져 있다. 테슬라 창업주인 일론 머스크는 하루 에 두 권씩 책을 읽을 만큼 유명한 독서광이고, 빌 게이츠는 책 추천 사이트를 운영할 정도다. 컴퓨터와 휴대폰 대중화 시대를 열고, 하늘을 나는 자동차와 우주 개발을 꿈꾸는 사람들도 결국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답은 책에서 구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