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시작되는 6월 말부터 스웨덴에서 볼 수 있는 신기한 자연 현상 중 하나가 바로 ‘백야(white night)’이다. 북위 59도에 위치한 스톡홀름에서는 자정이 넘어도 캄캄한 밤이 아닌 푸르스름한 어둠이 이어지며 그 광경을 찍어 한국의 지인들에게 보내주면 개기일식보다 신기하다고 하는 이도 있다.
밤새 해가 지지 않아 단점도 있지만 늦가을부터 다시 5~6개월의 길고 긴 어둠이 시작되기에 스웨덴인들은 한여름의 햇살에 감사하고 살아간다. 이처럼 1년에 몇 개월만 제외하고는 햇볕이 드문 척박한 자연조건인지라 전통적으로 농업 국가인 스웨덴에서 농사를 짓기란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실제 수차례 기근을 겪었고 이로 인해 전체 인구의 4분의1이 해외 이민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스웨덴인들은 이러한 시련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 DNA를 가진 것 같다. 기후만을 탓하며 주저앉지 않은 그들은 지난 1870년대부터 에릭손·아스트라콥코 등 제조 기업들을 탄생시켰고 1900년대 볼보·스카니아·사브·일렉트로룩스 등을 연이어 설립하며 스웨덴을 세계적인 제조 강국으로 탈바꿈시켰다.
세계 대공황으로 1934년 실업률이 34%까지 치솟고 노사 간 대립이 절정에 달하는 등 다시 위기를 맞았지만 스웨덴은 1938년 역사적인 살트셰바덴 협약을 통해 정부 개입 없이 노사가 상호 협조적인 관계를 구축해 경제적인 안정을 마련하고 20세기 후반 세계가 주목할 만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뤘다.
마치 공식과도 같이 ‘도전-응전-승리’의 역사를 이뤄낸 스웨덴이 21세기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내놓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혁신을 바탕으로 한 스타트업이었다. 스웨덴은 스포티파이 등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을 일컫는 ‘유니콘’ 배출 세계 2위에 빛나는 스타트업 강국이다.
이는 혁신에 대한 오랜 전통, 연구개발 부문에 대한 막대한 투자, 창업 관련 재정 지원 시스템, 학생들의 창업을 적극 장려하는 대학 분위기 등이 어우러진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과정에서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배움의 기회로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인식의 변화가 원동력이 됐다.
이 때문에 대학·연구기관·대기업·액셀러레이터 등으로 구성된 스웨덴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끊임없이 변화를 주도하며 성장의 구심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구성원들은 초기부터 스웨덴 시장이 아닌 전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어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마냥 멀기만 할 것 같은 이 스웨덴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이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6월 우리나라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우리 스타트업의 현지 진출을 지원하고자 한국과 스웨덴 양국 정부가 함께 추진해온 코리아스타트업센터(KSC) 사업이 1년여의 치열한 준비 과정을 거쳐 올해 상반기 스톡홀름에 지원센터를 세우고 현지 진출할 우리 업체를 선발했다. 하반기부터는 전문 액셀러레이터의 본격적인 교육과 동시에 시장 진출을 모색해나갈 예정이다.
코리아스타트업센터가 이처럼 구체화 단계에 들어선 것은 중소벤처기업부 같은 주관 부처를 비롯한 다양한 기관의 노력이 있었다. 우리 대사관도 스웨덴 정부 주요 기관과의 협의는 물론 동 센터의 현지 교육을 담당하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에피센터 대표를 직접 만나 협의하는가 하면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세미나 등 업계의 주요 동향을 파악해 전달하는 등 초기부터 관심을 갖고 도움이 되고자 노력해왔다. 스웨덴에서 싹 틔운 코리아스타트업센터의 성공을 위해 앞으로도 대사관은 또 하나의 든든한 우군이자 조력자로서 역할을 다해나갈 것이다.
지금 스웨덴에 백야가 있다면, 한국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스타트업 생태계인 스웨덴에 도전하고자 숱한 밤들을 하얗게 지새우는 젊은이들이 있을 것이다. 얼마 후 그들이 스웨덴에서 꿈을 키워갈 때 해가 지지 않는 이 하늘의 백야는 결코 낯설지 않은 존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