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통적인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 작동하지 않는 걸까. 중국은 지금 전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와 충돌을 빚고 있다. 미국의 무역공세에 맞서 자기편을 확보하겠다는 기본 전략은 이미 물 건너간 듯하다.
다른 나라의 지적이나 비판에 대해 ‘나는 무조건 옳다’는 오만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늑대전사’ 같은 중국 외교관들의 공격적이고 대립적인 태도가 대표적이다. 베이징에서 진행되는 중국 외교부의 매일 기자브리핑에는 “모욕하지 마라”, “반격하겠다” 등의 언급이 빠지는 날이 없다.
가장 최근의 대외 분쟁이고 또 가장 큰 문제는 지난달 30일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으로 절정에 이른 홍콩 사태다. 중국은 홍콩이 ‘중국의 내정’이라며 다른 나라의 간섭을 불허 한다고 주장하지만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영국의 보복공격이 중국으로서는 뼈아프다. 영국은 중국의 홍콩보안법의 제정과 이를 악용한 홍콩 내 민주파 탄압이 홍콩의 중국반환을 가능케 했던 ‘영국·중국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1997년 7월1일 홍콩 반환식에는 영국측 찰스 왕세자와 중국측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이 참석했었다. 영국은 국왕이 모욕을 당했다고 인식하는 셈이다.
영국은 자신의 주장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우선 과거 식민지 시절 해외시민(British National Overseas·BNO) 여권을 소지한 홍콩인 290만명에게 영국 시민권을 주겠다면 인력의 홍콩 이탈을 부추겼다. 이들은 대부분 홍콩에서 중산층이나 전문직 종사자기 때문에 중국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
영국의 반발은 유럽연합(EU)과 영연방 국가들의 반발로도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미국의 무역공세에 맞서 유럽의 협조에 공을 기울인 중국으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인 셈이다. EU는 그동안 미중 갈등에서는 한발 떨어진 채 머뭇거렸지만 앞으로는 어쨌든 중국 편을 들기는 어려운 셈이다. EU내 최대 국가인 독일의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은 1일 “(홍콩보안법이) 궁극적으로 EU와 중국 간의 관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보안법 문제와 관련해서는 유럽국가들 외에도 앞서 코로나19 책임론으로 충돌했던 중국과 호주의 간격을 더 벌리는 작용을 하고 있다. 앞서 중국과 관계 개선에 공을 들였던 일본도 홍콩보안법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에서 수위를 다투는 인도와의 갈등도 간단치 않다. 원래 중국은 인도와 국경분쟁을 거듭하는 등 사이가 좋지 않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경제적 목적으로 관계 개선에 노력해왔다.
하지만 지난달 15일 인도 북부 라다크 지역에서 중국과 인도 군인들이 충돌하고 이 과정에서 인도군 20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도의 분노가 거세다. 인도와 중국 간의 무역에서 중국이 막대한 흑자를 내고 있는 것을 감안, 인도는 본격적인 경제제재에 나섰다.
그동안 한국에 대한 사드보복 등 중국이 해왔던 일방적인 경제보복을 이번에는 인도에서 당하는 셈이다. 군사력이 인도에 비해 압도적이긴 하지만 인도를 힘으로 눌러 이겨봤자 호전적인 국가라는 이미지만 강화될 뿐 득이 될 것은 없어 중국으로서는 진퇴양난이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중국이 방공식별구역(ADIZ) 설치를 추진하는 등 남중국해에서 세력을 확장하면서 인근 베트남·필리핀 등과 충돌하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군사력을 늘리고 이를 뒷배 삼아 어업활동과 자원개발을 강화하는 등 사실상 실효지배에 나서면서 자신의 바다를 빼앗기고 있다는 인근 국가들의 반발이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 하이난성 해사안전국은 이달 1일부터 5일간 파라셀 군도(중국명 시사군도) 인근 해상에서 군사훈련을 한다며 이 기간에 일반 선박이 해당 해역에 진입해서는 안 된다고 지난달 29일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인근 베트남과 필리핀이 항의하고 있는 상태다.
이미 중국의 대외관계에서 ‘상수’가 된 미국과의 갈등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무역문제에 이어 화웨이 등 첨단기업의 안보위협, 대만, 위구르, 코로나19 책임론 등에 이어 홍콩보안법까지 이제는 쉽게 회복되기 힘든 적대관계로 진입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홍콩이 중국 공산당 독재의 치하에 들어갔다”며 중국 체제의 핵심을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으로 공을 들인 중동과 아프리카 상황도 만만치 않다. 이들 저개발국가들은 중국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확산시켰다고 불만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서양국가들이 앞서 단행한 채무탕감에 중국은 오히려 미적댄다고 불만이다. 코로나로 인해 중국 내에서 아프리카 출신들이 차별받는 것도 문제다.
중국의 가장 믿을 만한 동맹이라는 러시아의 상황도 좋지 않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이 치명적이다. 바이러스가 거침없이 확산되면서 2일 현재 러시아의 누적 확진자 수는 66만명으로, 세계 3위다. 이에 대해 중국은 코로나19 역유입을 막는다며 러중 국경폐쇄로 응수했다. 러시아는 이래저래 불만인 상황이다.
지난 2018년 만에 해도 미국만 있었던 중국의 대외 주요 갈등관계 목록에 이제는 전세계 주요 국가 대부분이 이름을 올린 셈이다. 이는 사실상 중국의 자충수라는 지적이 많다. 중국이 자국내 구조적인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다른 나라들의 이의 제기에 즉각적이고 다소 신경질적인 강경책으로 맞섰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대륙국가인 중국은 전통적으로 다수의 국가와 국경을 맞대며 대립하거나 교류해 왔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모두 ‘오랑캐(夷·이)’로 불렀던 이들이 힘을 합쳐 중국에 대항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기존 전략으로 삼았다. 이른바 ‘이이제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극도의 신중함과 함께 이익의 일부 양보도 필요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인식이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타이틀을 붙잡고 있는 중국에는 이미 사라져가고 있는 개념들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패착 사례는 이탈리아와의 관계다. 이탈리아는 일대일로에 유럽 주요국 가운데 처음으로 참여하는 등 중국에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확산된 코로나19로 이탈리아 전체가 초토화된 데 이어 작년말 이탈리아에서 나타났던 원인불명 바이러스를 이유로 중국 일부에서 ‘코로나19의 이탈리아 기원설’을 주장하면서 이탈리아인들은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