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제도

‘세입자는 약자, 집주인은 투기꾼’… 정부 흑백논리에 집주인들 운다

임대사업자 세제혜택 폐지에 ‘임대차 3법’도 대기 중

세입자 위주 법 논리에 ‘사업 관두겠다’는 사업자 속출

하지만 현행 법상 ‘자진 폐업’은 불가능해

“투기꾼 몰면서 퇴로까지 막아놔” 임대업자들 불만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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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서 8년 장기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한 A씨는 최근 사업을 접으려고 지방자치단체에 연락했다가 ‘폐업 불가’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수익이 잘 나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정부의 임대업자 세제 혜택 폐지 소식까지 들려오자 3,000만원의 과태료를 내더라도 사업을 접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자체에서는 “과태료 부과와 관계없이 사업자 말소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A씨는 “규제를 못 견뎌 나가려는데 퇴로까지 막아버리면 어떡하냐”고 하소연했다.

10일 발표가 예정된 부동산 대책에 주택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 폐지안이 담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궁지에 몰린 장기임대사업자들의 사업 포기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특히 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임대차 3법(전월세 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지금도 낮은 사업성이 더 낮아질 수 있다는 불안이 크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런 민간임대사업자들은 현재 ‘사업 포기’라는 퇴로조차 막힌 상황이다. 사업자들이 스스로 사업을 접는 ‘자진 폐업’의 규정이 현행 법이 명기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집주인들 사이에서는 “다주택 임대업자들을 투기꾼 취급하며 각종 규제 부담을 키우면서도 임대사업을 관둘 권리조차 막고 있다”며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자진 폐업’ 조항 없는 임대법…“손실 막심해도 관둘 수 없어”
민간임대특별법에 따르면 임대사업자 말소는 거짓·부정으로 등록했거나, 관련 법령을 위반한 경우 등 ‘징벌성’으로만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진 폐업’과 관련한 규정은 없다. 그렇기에 한 번 8년 장기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다른 임대사업자에게 집을 넘기지 않는 이상 8년 동안 강제로 임대사업을 유지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3,000만원의 과태료 대상이 되지만 과태료를 낸다고 해서 폐업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경기도 한 관계자는 “민간임대주택 사업자 말소 권한은 각 시·군·구의 장에게 있으며, 과태료를 낸다고 말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시장·군수·구청장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명확한 규정이 없다 보니 각 지자체들도 말소에 대한 판단 자체를 미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의 한 관계자는 “폐업에 대한 규정이 없어 관련 문의가 들어와도 법에 정한 사항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회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사업자들은 “규제로 몰아세우면서 폐업도 못하게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자진 폐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는 사업자들도 허다하다. 한 사업자는 “입주 초기에 사업을 시작해 임대료는 지금 시세보다 한참이나 저렴한데 임대료 인상 상한 5% 규제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를 인수하려는 임대사업자가 있겠나. 손발을 완전히 묶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퇴로가 막힌 일부 임대사업자들 사이에서는 손해를 감수하고 상당 기간 공실로 유지한 뒤 ‘사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빠져나가려는 ‘꼼수’도 나타나고 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법 상식이 통해야 하는데 자신의 사업을 정리하겠다는 시도 자체를 차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입법의 오류가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대차 3법’도 대기 중…“연이은 악재에 뒤통수 맞은 기분”
임대인들 사이 더 큰 불안은 7월 중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임대차 3법’이다. 임대차 3법은 전월세 신고제·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 등 과도한 임대료 부담으로부터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세 가지 법안을 일컫는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임차인은 계약 갱신을 통해 최소 4년간(2년+2년) 거주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고(계약갱신청구권제), 계약 갱신 때 임대료 증액 상한선이 5%로 제한(전월세상한제)된다. 또 임대차 계약이 이뤄진 지 30일 안에 계약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신고(전월세신고제)하는 것이 의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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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최근에는 전월세 상한제 등의 제도가 법 시행 후 새롭게 체결되는 계약뿐 아니라 갱신을 앞둔 기존 계약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이 드러내며 논란을 빚고 있다. 예컨대 세입자는 그대로인 채 집주인만 바뀐 주택의 경우 전세 계약 갱신 시 5% 이상 전세 값을 올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계약갱신청구권도 갱신 계약에 적용된다. 임차인을 내보내고 본인이 들어와 살려고 해도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를 요구하게 되면 내 집인데도 거주를 못 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이 같은 정부 정책 방향을 보며 임대사업자들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입장이다. 한 사업자는 “임대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이 폐지되면 당연히 비용 등이 늘어 사업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전·월세를 올리는 일도 제한을 두고 있다”며 “가뜩이나 신경 쓸 게 많은 임대사업인데 수익조차 나빠지면 누가 임대사업을 하려고 하겠냐”고 토로했다.


임대인들 반발에 전월세 흔들…소급적용은 하지 않을 수도
임대인들은 한때 사업자 등록을 장려했던 정부가 임대사업의 혜택을 축소하는 등 규제 강도를 높이자 집단행동에까지 나서며 반발하는 모습이다. 특히 이들은 세제 혜택을 소급 적용한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위헌소송까지 불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앞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017년 12월 등록임대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며 “사업자로 등록하면 세제ㆍ금융 혜택을 드리니 다주택자 분들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시면 좋겠다”고 권장한 바 있다. 실제로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와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임대 소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주기로 했다. 그 결과 2017년 98만 가구였던 등록임대주택은 올해 1분기까지 157만 가구로 늘어났다. 하지만 혜택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2018년 9·13 대책에서 조정대상지역에 대해 양도세·종부세 혜택을 축소하기로 했다. 이후에도 취득세·재산세 혜택을 줄이다 최근에는 제도 자체를 없애기로 한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 같은 ‘다주택 임대업자 세제 혜택 폐지안’과 소급 적용안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정부는 뒤늦게 발뺌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토교통부가 9일 보도 해명자료를 통해 “현 정부에서 세제 감면 신설사항은 없으며, 역대 정부에서 마련된 기존 혜택 연계 및 장기임대 유도를 위한 요건 강화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날 발표될 부동산 대책에 담길 것으로 예상됐던 ‘임대업자 세제 혜택 폐지안’과 소급 적용이 다소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진동영·양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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