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허울뿐인 재정운용계획..구속력있는 '한국형 재정준칙' 절실

[대한민국 부채 리포트]<하> 국가부채 해법은

올 총지출 증가율 16% 급증 불구 총수입은 되레 1.1% 감소

재정수지적자 최악인데 OECD국가 중 韓·터키만 준칙 없어

정부 '유연성' 강조하지만 실효성있는 '채무브레이크' 필요

1315A05 널뛰기하는 중기 재정운용계획



정부는 지난 2007년부터 해마다 5년 단위 중기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작성해 국회에 제출하고 있다. 전략적 재원 배분과 함께 중장기 재정건전성을 관리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강조되는 확장재정 기조 하에서 중기 재정운용계획은 재정건전성 방어에 그 어떤 역할도 해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낙관론에 젖어 현실과 동떨어진 재정 전망을 하고 있다는 자성론이 정부 내에서조차 제기된다.

정부가 다음달 중 ‘한국 실정에 맞는 재정준칙(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보다 구속력 있는 준칙이 제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정부는 유연한 형태의 재정준칙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방만 재정을 규제할 실효성 있는 준칙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반복되는 ‘총수입>총지출’ 계획

1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재부가 2017년 발표한 중기 재정운용계획(2017~2021년)은 해당 기간 연평균 총지출 증가율을 5.8%, 총수입은 5.5%로 제시하고 있다. 바로 직전 해 재정운용계획에서 “향후 5년간 총지출 증가율을 총수입 증가율보다 낮게 가져갈 계획”이라고 했지만 1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 뒤집혔다. 이후 2018년 내놓은 2022년까지의 재정운용계획에서는 연평균 증가율이 총지출 7.3%, 총수입 5.2%로 격차가 커지더니 지난해 발표한 2019~2023년 계획에서는 각각 9.5%와 6.5%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올해의 경우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 기준으로 총지출은 지난해보다 무려 16.5% 늘어나는 반면 수입은 되레 1.1% 감소한다. 중기 재정운용계획이 재정 확장을 전혀 제어하지 못한 것이다. 본예산 기준으로 따져도 총지출 증가율(9.1%)은 총수입 증가율(1.2%)을 9배 가까이 넘어선다. 들어오는 돈 늘리는 속도가 쓰는 돈 불어나는 속도를 못 따라가다 보니 그 갭(gap)은 결국 국채를 찍어 메웠다. 그 결과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3.5%,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5.8%로 사상 최악으로 치달았다.


3차 추경안을 검토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재정지출 수준이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일시적 재정지출 확대’라는 정부·여당의 기류와 온도 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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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국가 중 韓·터키만 재정준칙 없어

고삐 풀린 듯한 재정지출 확대, 이에 따른 급격한 재정건전성 악화는 재정준칙 도입 주장의 논리적 근거를 강화시킨다. 지난 2016년 정부가 재정준칙 도입을 골자로 하는 재정건전화법 입법을 추진했을 당시보다 재정준칙 필요성은 더 커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가입국 가운데 우리나라와 터키를 제외한 32개국이 재정준칙을 운용하고 있다. 한국재정학회장을 지낸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이미 늘어난 빚을 다시 줄이기 어렵다면 지금부터라도 재정 지출을 통제할 수 있는 재정준칙과 같은 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사원도 최근 정부지출 확대 속도에 우려를 표하며 “재정준칙 도입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고 국회입법조사처도 21대 국회 입법 과제 중 하나로 재정준칙 도입을 꼽았다. 특히 감사원은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로 “재정건전성 견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중장기 대응방향 수립”을 언급했다. 형식적인 준칙이 아닌 실효성 있는 접근을 주문한 것이다.

하지만 재정당국은 강제성보다는 유연한 재정준칙을 염두에 두고 있다. 홍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 나와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룸(여유)을 만들면서도 재정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을 어느 정도 경계할 수 있는 준칙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유연한 재정준칙 도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에 국가채무비율이나 관리재정수지 한도를 못 박기보다는 증가 속도를 제어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재정 한도를 법으로 정해버리면 고령화와 경제 위기에 대응할 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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