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북문화재단의 공식 출범을 계기로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재단 대표이사를 맡아 ‘문화 전도사’로 활약한다는 소식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30여년의 공직생활에 이어 한국무역협회 회장과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그의 갑작스러운 변신에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경북 안동 출신인 이 전 장관은 지난 14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평생을 새로운 길을 여는 개척자처럼 살아왔다고 생각한다”면서 “고향에 대한 마지막 봉사라는 각오로 문화 산업을 키워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대한민국에 위기이자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면서 “현금을 나눠주는 헬리콥터형 복지에 앞서 기업의 활력을 북돋우는 ‘생산적 뉴딜’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요즘 문화 전도사로 활동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소 생소한 분야가 아닌가.
△공과대학 출신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무원으로 지낸 것도 그렇거니와 항상 새로운 개척자처럼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과거 평창동계올림픽위원장을 지냈을 때도 스포츠 문외한이 맡았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문화 분야도 사실 처음은 아니다. 무역협회장 시절에 강남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았고 현대자동차 정몽구재단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고향과 문화를 위한 봉사야말로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귀농·귀촌이 아니겠는가.
-우리도 이제는 문화·서비스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산업구조가 급격히 재편되고 정보기술(IT) 시대로 바뀌면서 기본적으로 융합 서비스가 각광받게 마련이다. 선진국일수록 부가가치가 높은 문화·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높은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의 IT 인프라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 구축돼 있다는 사실이다. 540만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꺼번에 온라인수업을 실시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과거에 IT 인프라를 잘 깔아놓으니 코로나 시대를 맞아 제대로 효과를 보는 것이다. 흔히 관광을 ‘굴뚝 없는 산업’이라고 부르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해외로 몰렸던 관광 수요를 국내로 돌리는 작업을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은 비단 공장뿐 아니라 관광 산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
-문화예술 분야를 비롯해 산업계 전반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며칠 전에 경기 시흥시에 있는 시화국가산업단지를 찾았더니 수주물량이 급격히 감소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이미 제조업부터 시작해 서비스업까지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을 정도다. 공연예술 분야의 경우 지난 1월 390억원에 달했던 전국의 매출액이 4월에는 47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관광 분야도 매출이 반토막 났다. 지금은 일시적 긴급대출로 버티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예상보다 길어진다고 봐야 한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앞세워 위기를 넘겠다고 나섰는데.
△뉴딜은 ‘소비적 뉴딜’과 ‘생산적 뉴딜’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의 경우 대공황 당시 두 차례에 걸쳐 뉴딜 정책을 펼쳤다. 1차 뉴딜은 후버댐을 만들고 도로를 짓는 등 인프라를 건설하는 데 주력했고 2차 뉴딜은 근로시간 문제 등 사회복지에 중점을 뒀다. 우리는 이미 최저임금이나 근로시간 등 근로자 복지에서 앞서 나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뉴딜은 가급적 인프라 투자 쪽으로 많이 가야 한다. 우리 경제의 미래 경쟁력을 키우고 기업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이 새로운 뉴딜 정책에 담겨야 한다는 얘기다. 먼 훗날을 내다보고 인프라를 깔아주는 게 지금 해야 할 투자다.
-생산적 뉴딜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나.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현금 살포형, 헬리콥터형 복지가 일시적으로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반면 생산적 뉴딜이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사업 초기에 댐이나 고속도로, 학교, 공공 의료시설을 짓는 데 주력한 것을 말한다. 우리의 경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감염병 진료 시스템이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공공 의료시설을 전국에 골고루 세우고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언제 다시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국가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고 의료 인프라를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
-정책 성패의 최대 관건은 일자리 창출이 아니겠는가.
△뉴딜 정책이 무엇을 담아야 하느냐는 문제는 미국의 뉴딜 정책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우리가 과거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추진할 때도 1~3차까지는 성장 위주로 갔고 이후 4차 계획부터는 복지와 나눔을 강조했다. 초기에는 먹거리를 만드는 데 중점을 뒀고 그다음부터 나눠 갖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전략이 필요하다.
-과거 IMF 외환위기를 넘는 데 벤처 붐이 큰 도움이 됐는데.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관심을 가졌던 핵심 분야가 바로 벤처 생태계였다. 이번에도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기업들이 많다. 진단키트를 개발한 씨젠처럼 혁신적 아이디어를 보유한 중소 벤처기업들이 클 수 있도록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중국은 한 해 창업기업이 550만개를 웃돌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한참 부족하다. 창업 여건이 굉장히 열악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앞다퉈 창업에 나서고 기업가정신을 북돋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코로나 위기 극복 대책이다.
-기업가정신을 살리기 위해 당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요즘도 기업인들을 많이 만나는데 경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하더라. 사실 기업이 직면한 어려움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정책 당국자들이 현장에서 기업인들을 30분만 만나면 기업인들 입에서 다 나온다. 그래서 나는 당국자들을 만나면 현장을 찾아 기업인들을 많이 만나라고 주문한다. 기업의 기를 살려주고 마음껏 뛸 수 있도록 생태계를 만들어주라고 말이다. 후배 공무원들에게도 기업인을 만나면 ‘노 벗(No, but)’이 아니라 ‘예스 벗(Yes, but)’ 화법을 쓰라고 조언한다. 기업의 애로사항을 긍정적으로 보고 낡은 규정을 하나라도 더 고치고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평소 민간의 활력을 많이 강조해왔는데.
△그동안 강의를 다닐 때면 항상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생긴다’는 제목을 내걸었다. 진정한 일자리는 기업에서 나오는 것이고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몇 해 전 기업은행이 송해씨를 앞세워 ‘기업은행에 예금하면 기업을 살립니다’는 내용의 광고를 만들었는데 내가 좀 도움을 줬던 적이 있다. 광고 뒷부분에 ‘그리고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늘어납니다’라는 문구를 덧붙이도록 했다. 지금 같은 위기상황에서 가장 절실한 말이 아닌가 싶다.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분명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현 정권 들어 노사관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변했다는 지적이 많은데.
△노조가 사용자에 맞서 대응하는 힘을 갖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사측과 노측 사이에 힘의 균형이 맞춰져야 한다. 노측이 앞서도 안 되고 사측이 앞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밸런스(균형)가 중요한 상황이다. 노조를 약자로 보느냐 강자로 보느냐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어느 쪽도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누르거나 앞서나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게 바로 상생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진통 끝에 14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5%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최저임금위에 경총도 참여하는데 한 번도 순탄하게 결정된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어려울수록 대화하고 양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경영난으로 회사가 무너지면 결국 근로자들도 소중한 일터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가 난파선 처지에 내몰렸는데 서로 자기 몫을 따져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산업자원부 장관 시절 상생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산자부 장관으로 있을 때 원자재 파동이 터졌다.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고 고철마저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산업계 전반의 밸류체인이 무너져버렸다. 난국을 풀어내자면 결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상생법안을 만들고 상생재단까지 출범하도록 만들었다. 대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상생펀드를 만들고 중소기업과 공동으로 기술개발에도 나섰다. 나중에 정치적으로 흘러가면서 상생 개념 자체가 많이 퇴색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공직과 민간기업·학계를 넘나드는 풍부한 경력을 갖고 있는데.
△솔직히 공무원으로 지낼 때는 민간 부문을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을 맡아도 마지막 일로 생각하고 심혈을 기울였다. 이제는 진짜 마지막 봉사다. 퇴계 이황 선생은 69세에 공직생활을 마치고 12박13일을 걸어 도산서원으로 내려가 후학을 양성했다. 퇴계 이황 선생은 착한 일을 북돋우되 나쁜 일은 너무 들추지 말고 용서해야 사회가 진전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1949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대부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이어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제12회 행정고시에서 수석으로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해 상공부 수출과장,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차관보·차관을 거쳐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관료생활을 마친 뒤 한국생산성본부 회장과 서울산업대 총장, 한국무역협회 회장, STX에너지·중공업 총괄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 등을 지내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016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을 맡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으며 현재 경북문화재단 대표이사와 서울대 총동창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