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가루전쟁]전쟁들은 죄다 '가루' 때문이었다

■가루전쟁

도현신 지음, 이다북스 펴냄




달달한 설탕을 인류 최초로 만들어 먹은 이는 고대 인도사람들이었다. 설탕을 추출하는 사탕수수의 원산지가 인도 갠지스강 유역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군대는 갠지스강 인근을 점령하고 사탕수수를 본국으로 가져가 재배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기원전 326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원정 후 사탕수수를 가져간 것이 지중해 동부 지역으로의 설탕 전파를 이뤄냈다. 소량이나마 설탕을 생산하던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설탕을 맛보기 어려워진 유럽인들은 1097년 시작한 십자군전쟁 때 중동으로 쳐들어간 김에 설탕을 획득했다. 십자군이 이슬람 세력인 트리폴리공국과 동맹을 맺으려다가 그곳의 사탕수수 농장을 보고는 돌변해 전쟁을 벌였을 정도로 설탕의 매력은 치명적이었다.

‘전쟁 유발자’는 설탕뿐이 아니었다. ‘작은 황금’이라 불린 소금은 동유럽 알바니아 지역의 고대 부족국가들을 끝없이 전쟁으로 몰로 간 주범이다. 소금 산지를 독차지하고 싶었던 부족들은 끊임없이 싸움을 벌였다. 오늘날 프랑스에 속하는 갈리아 지역 남동부의 거대한 암염 광산을 노리고 기원전 70년 게르만족이 침입했고, 갈리아인들은 로마의 카이사르에게 도움을 청해 기원전 58년 게르만족을 다시 쫓아냈다. 로마가 빈번한 유대인들의 반란에 시달리면서도 이스라엘 지역을 포기못한 이유 또한 사해의 소금 때문이었다. 로마 군인들은 봉급으로 소금을 받았고 이 ‘소금 화폐’를 부르는 단어였던 ‘살라리움(salarium)’에서 월급을 뜻하는 단어 ‘샐러리(salary)’가 나왔다.


신간 ‘가루전쟁’은 이처럼 세계 역사를 흔들고 지도마저 바꿔놓은 매혹적인 가루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설탕과 소금 외에 후추, 밀, 커피, 초콜릿이 그 주인공이다.



인도와 동남아 이외 지역에서는 전혀 생산되지 않던 후추를 구하기 위해 유럽인들은 머나먼 동방으로 함대를 보냈다. 종교를 명분으로 한 십자군전쟁의 이면에는 아랍 상인에게 비싼 값으로 사들이던 후추를 싸게 확보하려는 저의가 깔려 있었다.

흔해 보이는 밀은 로마가 기원전 212년 점령한 시칠리아의 대농장에서 엄청나게 생산됐으니 그 바람에 로마의 소규모 밀 농부가 농사를 포기하고 도시로 가 일용직 노동자가 됐을 정도다. 로마제국이 무너진 후 허술해진 틈을 타 시칠리아를 침입한 바리바르바리 해적은 오스만제국의 후원을 등에 업고 밀을 뺏기 위한 전쟁을 기독교도를 상대로 이슬람이 벌이는 성전(聖戰)으로 포장했다.

프랑스혁명을 모의한 자리에 놓였던 커피, 제2차 세계대전의 판도를 바꾼 초콜릿 등 가볍게 보던 가루들의 묵직한 가치가 흥미롭다. 다양한 사례들을 배치해 ‘알쓸신잡’을 원하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책이다. 1만6,000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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