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규제는 시장의 과열을 진정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인데 전국적으로 적용하면 지방 중소도시는 죽으라는 말밖에 안 됩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이 청원인은 “지방 중소도시는 오랜 침체로 지역 경제가 무너지고 주택 가격이 수년간 하락했다”며 “지방은 거래를 활성화시켜 달라”고 하소연했다.
‘7·10대책’으로 강화된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가 전국적으로 적용되면서 지방 주택시장에 더 짙은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실수요자들 역시 “갑자기 커진 세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수도권과 지방을 같은 규제로 묶는 것은 지방 부동산 시장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호소할 정도다.
16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이번 대책으로 강화되는 부동산 관련 세금 중 상당수는 규제지역뿐 아니라 지방 등 비규제지역에도 일괄 적용된다. 세부적으로 보면 △2주택 이상 보유자에게 물리는 취득세율 8∼12%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종부세율 1.2∼6.0% △2년 미만 보유 주택(분양권 포함)을 팔 때 적용하는 양도세율 60∼70% 등이 대표적이다. 그간 지방 아파트 값을 그나마 지탱해온 갭투자나 분양권 전매마저 어려워진 것이다. 이에 따라 벌써부터 지방 주택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 강남과 지방에 소규모 주택 2채를 가진 A씨는 최근 지방의 2채를 모두 매물로 내놓았다. 지방에도 같은 징벌적 과세가 적용되기 전에 서울의 한 채만 보유하기 위해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한 대책이 오히려 양극화를 더욱 부추겨 집값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KB 자료에 따르면 4분위(상위 20~40%) 아파트 값을 기준으로 할 때 지난 2017년 5월 대비 올 6월 기준으로 서울은 38.07% 상승한 반면 지방은 10.25% 하락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주택자를 타깃으로 하더라도 지역별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하는데 이번 대책은 지방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이번주 주간 아파트 값 동향에 따르면 매매가는 오름폭이 소폭 축소된 가운데 전세가는 상승폭이 커졌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전주 0.10%에서 이번주 0.13%로 상승하며 55주째 오름세를 이어갔다. 강남 4구 전세가는 0.17%에서 0.25%로 올랐다.
지방아파트 처분하고 '똘똘한 한채' 집중 움직임
# 강원도 동해시 구축 아파트인 ‘동해대동현대’ 전용 73.4㎡는 지난 15일 9,500만원에 매매거래가 이뤄졌다. 한 달 전인 6월4일 1억1,500만원에 거래된 데 비하면 2,000만원 떨어진 것이다. 충남 계룡에 있는 ‘계룡엄사성원’ 전용 58.3㎡는 6월15일 8,700만원에 거래됐으나 12일에는 1,300만원 낮은 7,350만원에 거래됐다.
‘7·10대책’으로 강화된 취득세·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가 전국적으로 적용되면서 지방 주택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6월 초까지만 해도 서울 등 수도권 위주로 규제를 강화하면서 반대급부로 지방 부동산시장이 반짝 활기를 띠었지만 6·17대책과 7·10대책에서 연이어 지방으로 부동산 규제를 확대한 데 따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규제가 전국적으로 ‘평준화’하면서 오히려 수도권과 서울, 강남으로 수요가 집중되는 ‘똘똘한 한 채’ 붐이 다시 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징벌과세 동일 적용, 실수요자들 패닉=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지방 부동산시장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정부가 서울과 수도권의 과열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규제를 시행해온 덕이다. 하지만 ‘7·10대책’의 경우 다주택자 양도세 및 취득세 중과 등을 지방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예를 들어 이번 대책으로 2주택 이상 보유자에게 적용하는 ‘취득세 8%’가 서울과 지방에 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부동산 카페 등에는 지방 수요자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A씨는 “집이 오래돼 지난해부터 매도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얼마 전 분양권을 계약했다”며 “아이 키우면서 빠듯하게 모은 돈으로 자금계획을 다 세워놓았는데 이번 대책으로 취득세가 8%로 올라가면서 갑자기 5,000만원 되는 돈을 추가로 마련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말했다.
지방에 살고 있는 B씨 역시 6월 이사 갈 집을 계약했지만 갑작스럽게 세 부담이 늘어 걱정이다. B씨는 “나는 2주택자이기는 하지만 집 한 채는 수천만원에 불과한 소형 주택으로 서울이나 수도권의 수억원 되는 집과 비교할 수 없다”며 “현재 살고 있는 오래된 집을 팔고 이사를 가려고 하는데 취득세 중과 대상이 됐다. 계약상으로 내년 초에 입주할 예정이어서 3개월 유예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부동산 규제, 지방이 더 피해자=시장에서도 연이은 규제로 지방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 예로 정부는 법인의 부동산 매입을 옥죄고 매물을 팔도록 유도하고 있다. 서울경제가 분석한 올 1~5월 아파트 거래에서 법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서울은 1.56%에 불과하다. 법인의 부동산 매입이 거의 없는 셈이다. 반면 울산 4.61%, 충남 6.24%, 충북 6.87%, 전북 4.12% 등은 법인 거래 비중이 매우 높다. 법인발 급매물 출하가 서울이 아닌 지방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지방의 분양권 및 갭투자도 사실상 어렵게 된다. 현행 분양권 양도세율은 비규제지역의 경우 기간에 따라 6~50%, 조정대상지역은 기간에 상관없이 50%였지만 이번 대책으로 규제와 관계없이 보유기간 1년 미만은 70%, 1년 이상은 60%로 인상된다. 이렇다 보니 경남 김해·거제, 경북 구미 등에서는 제로 프리미엄까지 속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프리미엄이 3,000만원 넘게 붙었던 김해 삼계동 K아파트 59㎡ 분양권은 대책 이후 분양가 수준에 매매 가능한 물건이 나왔다. 충북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의 한 아파트 전용 84㎡ 분양권은 한때 프리미엄이 7,000만원까지 붙었지만 최근 초급매 매물의 경우 프리미엄이 1,50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아울러 취득세 중과로 갭투자를 노린 외지인 유입도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방의 경우 서울 등 수도권의 갭투자 외지인이 주요 투자세력 중 하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 “다주택자 지방 아파트 우선 처분”=전문가들은 이번 7·10대책으로 ‘똘똘한 한 채’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주택자들이 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방 아파트를 처분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임병철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최근 집값 상승의 순서를 보면 서울 재건축에서 시작해 마용성, 서울 외곽, 경기도, 지방으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하지만 최근 연이은 부동산 규제로 지방도 규제가 심해지면서 다시 서울로 투자가 집중될 공산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규제 풍선효과를 타고 단체 원정투자나 입도선매식 투자를 하는 수요는 사라질 것”이라며 “다만 시중에 유동성이 워낙 풍부한 상황이라 급격한 하락보다는 당분간 보합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센터 부장은 “지방 아파트시장에 단기 갭투자에 나섰던 분들이 지방 아파트 처분과 관련한 문의를 많이 주신다”며 “법인의 경우 올해 안으로 매물을 상당수 내놓을 것으로 보이며 다주택자 개인도 내년 6월 세금 부과 기준일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유세 부담 고스란히 세입자에…주거불안 커질수도
정부가 다주택자들을 겨냥해 보유세 부담을 크게 높이면서 서울 강남의 1주택자보다 비조정지역인 지방의 2주택자가 더 많은 보유세를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금 과표인 공시가격은 서울이 지방 2채보다 높지만 보유세는 지방 2채 보유자가 더 내는 셈이다. 지방의 경우 집값 상승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은데도 ‘징벌 과세’의 부담이 훨씬 크다는 지적이다.
16일 서울경제가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문센터 팀장에게 의뢰해 비조정지역인 대구 수성구의 2주택자와 서울 송파구 1주택자의 보유세 부담 추이를 비교해본 결과 올해부터 두 소유자의 보유세 부담 차이가 역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때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7·10대책에 따른 인상분이 반영되는 내년에는 차이가 더욱 커지게 된다. 세율은 조정대상지역 해당 여부를 기반으로 중과 여부가 정해지는데 대구 수성구의 경우 투기과열지구지만 조정지역으로는 지정되지 않았다.
시뮬레이션 결과 대구 수성구 수성동의 동일하이빌레이크시티 전용 163㎡(공시가 7억4,300만원)와 인근의 수성3가 롯데캐슬 전용 121㎡(7억3,000만원) 두 채를 가진 경우 올해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을 합친 총 보유세는 874만원 수준이다. 반면 이 두 채를 합친 것보다 공시가가 1억원 이상 비싼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 전용 82㎡(16억5,000만원) 1채를 가진 경우 올해 837만원만 내면 된다.
지난해에는 대구 2채 보유세가 662만원, 서울 잠실 1채 보유세가 793만원으로 서울 1채 소유자가 100만원 이상 더 내야 했지만 올해 역전이 나타난 것이다. 올해부터 다주택자의 종부세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금 격차가 내년에는 더 커진다는 점이다.
시뮬레이션 결과 내년에는 대구 2채 1,262만원, 서울 송파 1채 1,112만원으로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정부가 7·10대책을 통해 다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을 대폭 늘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부 원안대로 통과되면 3주택 이상 및 조정대상지역 2주택에 대한 세율이 1.2%에서 6.0%로 상승한다.
세무 업계에서는 정부가 집값 상승의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까지 일방적으로 ‘징벌성 세금’을 물리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반발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서울의 ‘똘똘한 한 채’ 가격 상승률이 지방 여러 채보다 높은데도 지방에서 두 채를 가졌다고 세금을 더 내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다. 특히 집값 상승 기대가 크지 않은 지방의 경우 보유세 부담이 세입자에게 전가될 수 있어 오히려 주거불안을 촉발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우 팀장은 “다주택자를 규제하기 위해 세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작용인 셈”이라며 “대구 외에 지방 광역시 등에서 다주택을 보유한 경우 세 부담이 늘어 피해를 보는 경우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