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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60> ‘바잉파워’로 위안화 사용처 늘려…금융시장 통제는 딜레마

■위안화 국제화 어디까지 왔나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전경. /로이터연합뉴스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전경. /로이터연합뉴스



“기축통화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동시에 국제통화를 다원화해야 한다.” 원자바오 전 중국 총리가 지난 2009년 4월 18일 보아오포럼 기조연설에서 중국 통화인 위안화의 미래에 대해서 한 말이다. 여기서 ‘기축통화’는 달러를 의미한다. 또 다원화는 중국도 한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뜻으로, 결국 중국 위안화의 글로벌 사용 확대가 목적이다. 원 전 총리의 연설은 당시까지 대외적 폐쇄경제 아래 국제적으로 거의 미미한 존재였던 위안화를 본격적으로 국제화하고 결국은 글로벌 기축통화로까지 만들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 연설을 전후한 시기에 중국은 이른바 ‘위안화 국제화’에 시동을 건다. 원 전 총리의 연설에 앞서 2008년 12월부터 아르헨티나·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한국 등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잇따라 체결했다. 이어 2009년 7월 상하이·광저우 등 중국 5개 도시와 ‘일국양제(한 국가 두 제도)’ 지역인 홍콩·마카오 사이의 위안화 무역결제를 시작했고 이어 9월에는 홍콩에서 위안화 국채를 처음 발행했다. 홍콩의 위안-달러 간 역외 외환시장은 2010년 8월 개설됐다. 2012년부터는 위안화적격외국기관투자자(RQFII) 제도가 시행됐으며 이후 비준금액 한도는 계속 늘고 있다.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에 나서게 된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달러의 취약성이 노출된 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달러화 체제가 크게 흔들리면서 중국이 금융시장에서 자신들도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물론 그러려면 중국 금융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2009년을 경계로 중국은 위안화를 매개로 해외 금융시장 공략에 나서게 된 이유다.

한편으로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서 벌어들인 돈의 활용처를 찾게 된 것도 주요한 원인이다. 세계 최대의 외환 보유국이 되면서 달러 대비 위안화의 가치에 대해 생각했을 듯하다. 중국은 2010년 경제규모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국가가 됐다.

그로부터 10여년 흐른 지금 중국 위안화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미중 무역전쟁에 이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글로벌 경제가 다시 흔들리고 달러 패권이 주춤한 상황에서다. 10여년 전과는 달리 중국 경제의 규모도 미국이 무시못할 정도로 성장했다.

외신에 따르면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이달 초 상하이국제에너지거래소(INE)에서 중국에 이라크산 원유 300만배럴을 공급하며 위안화로 거래했다. 중국이 2018년 상하이에 원유선물시장을 연 뒤 석유 메이저회사의 위안화 표시 거래는 처음이라고 한다. 로이터통신은 또 세계적인 에너지 무역회사 머큐리아도 오는 8~9월 위안화로 원유를 거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최대 원유 수입국이라는 입장을 살려 원유시장을 2018년 자국에 열었지만 실제 위안화 표시 거래는 중소 석유상이나 미국의 제재를 받는 베네수엘라와 이란 등에 그쳤다. 그동안 세계 원유 거래는 뉴욕이나 싱가포르, 런던 등의 거래소에서 주로 달러화로만 이뤄졌다. 원유 거래를 달러로 한다는 것은 글로벌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기본 패러다임이었다.

그럼에도 이번에 BP가 위안화 표시 거래를 수용한 것은 결국 중국의 바잉파워(Buying power·구매력)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 원유 수요가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도 중국만이 수입을 확대하는 상황이다. 중국이 구매자 우위에서 위안화 결제를 요구했는데 영국 메이저회사가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이를 허용한 셈이다. 이미 2018년 기준으로 중국의 원유 수입량은 하루 평균 1,104만 배럴로 세계 1위이며 2위인 미국(993만배럴)과의 격차를 매년 더 벌리고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 인근 북해 유전에서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영국 원유의 주요 구매처로 중국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AFP연합뉴스영국 스코틀랜드 인근 북해 유전에서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영국 원유의 주요 구매처로 중국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물론 현재 국제거래에서 아직 위안화는 달러화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따르면 지난해말 국제지급거래에서 달러 비중은 42.2%였고 위안화는 1.9%에 불과했다. 유로화 비중이 31.7%로 높기는 하나 이는 대부분 유럽연합(EU) 국가 내에서 발생해 실제 국제거래에서는 달러화가 보편적인 수단이다. 특히 위안화 비중은 2015년 1.6%였는데 이후 4년 동안 겨우 0.3%포인트 늘어나는데 그쳤다. 위안화 국제화는 중국의 경제규모 확대 속도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위안화의 비중이 낮을까. 일단 미국의 경제의 압도적 지배력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력이 사실상 세계 경제를 지탱하는 상황이 되면서 결제 통화로 달러화의 사용이 고착된 것이다. 특정국가의 화폐 가치 평가에서 ‘달러당 **화’는 기본적 인식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화의 비중이 지나치게 낮은 것을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위안화의 비중은 훨씬 경제력이 떨어지는 영국의 파운드화(7.0%)와 일본 엔화(3.5%)는 물론이고 캐나다 달러화(2.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기본적으로 중국의 폐쇄적인 금융시장 탓이라고 보고 있다. 이른바 ‘중국 특색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기 위해 중국이 금융시장을 통제하고 그 일환으로 위안화의 거래를 엄격히 제한하다 보니 이 화폐의 국제적 사용이 지지부진하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금융시장에서는 부정적 측면으로 투기세력이 없을 수는 없고 이런 세력들이 취약한 중국 사회를 흔들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다. 현재 위안화를 해외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해외로 보내는 데 어려움은 국제 거래를 한 사람이면 누구나 겪었고 지금도 겪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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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로서도 위안화에 대한 통제를 풀다 보면 금융시장이 휘둘리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 국제화는 필요한 데 사회통제를 위해 국제화를 가로막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를 타개하는 수단으로 내놓은 중국 정책이 관리된 위안화 사용 확대다. 대표적인 것이 무역거래에서의 위안화 사용 강제,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에서의 기본통화, 그리고 디지털위안화 추진 등이다.

무역거래에서의 위안화 사용은 앞서 수입 원유 대금 지불의 사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바잉파워를 무기로 수입대금으로 위안을 지불하고 이것이 시장에서 순환하게 하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중국 경제가 한발 앞서 정상화되면서 원자재의 수요가 늘어나고 결국 수출국들은 중국의 요구에 취약한 것이다.

일대일로 사업도 마찬가지다.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등에 걸쳐 중국이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벌이면서 이의 대금으로 위안화를 뿌리는 것이다. 사업 대상국가들은 대개 저개발국가이기 때문에 중국의 요구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은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차관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디지털위안화는 첨단 분야에서도 중국이 주도권을 쥐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현금화폐로는 단기간에 미국 달러를 앞지를 수 없는 상황에서 디지털화폐를 통해 역전을 시도하자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초로 국내 일부 지역에서 디지털위안화 시험사용에 들어갔다. 당초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도입하겠다는 목표였지만 최근 상황에서 앞당겨질 수 있다.

중국이 물건의 대금이나 차관으로 디지털화폐를 뿌린다면 위안화가 강제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나 서방에서는 이런 기술도입에 대해 실효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지만 중국은 독재체제 특유의 집행이 가능하다. 디지털위안화 시험사용 지역에 ‘시진핑 도시’라는 슝안지구가 포함된 것도 현 시진핑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

중국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디지털위안화’ 모습.   /바이두 캡처중국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디지털위안화’ 모습. /바이두 캡처


최근 무역에서 첨단기술, 남중국해, 인권, 홍콩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중 갈등이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를 한층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홍콩 국가보안법 논란이 최고조였던 지난 6월초 미국 일부에서 중국에 타격을 주기 위해 글로벌 달러결제 체제에서 중국을 퇴출시키자는 이른바 ‘핵옵션’ 논의가 나왔다. 글로벌 경제에 대한 쓰나미급 충격 때문에 단기간에 실현이 되기는 어렵지만 그런 논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중국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딩솽 스탠다드차터드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희망 사항이었던 위안화 국제화가 미국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미국이 지배하는 달러체제에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자는 시도가 강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의 딜레마는 여전하다. 애초 2018년 미중 갈등의 시작은 미국이 중국의 개방과 공정한 시장을 요구한 데서 시작됐다. 여기는 금융시장 개방도 포함된다. 중국은 미국 시장에서 자유롭게 돈을 버는데 중국에서 미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중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위안화 국제화를 시도한다면 이것도 결국은 중국 금융시장 개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다. 중국이 수입 원자재 값으로 위안화를 떠맡기고 있지만 이것이 선순환이 되려면 위안화로 살 수 있는 상품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9년 5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가 시기상조라며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의도적으로 막아 무역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여전히 높은 금융규제 문턱과 불편한 위안화 태환 등도 국제화에 장애요인”이라고 분석했었는 데 11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은 상황이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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