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평범해보이는 육상대회 기념사진…6·25 전쟁 속 한 장면이었다

[책꽂이-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박건호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유물 아닌 영수증·일기·사직서 등 수집

평범한 수집품 통해 역사의 단편 이해

‘한국전쟁 중 육상경기대회 기념사진’.=사진제공/휴머니스트‘한국전쟁 중 육상경기대회 기념사진’.=사진제공/휴머니스트



“내 수집품 중에 낡은 태극기가 한 장 있다. 이 태극기는 사괘를 먹으로 대충 그런 것인데, 태극은 빨간색 뿐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빨간색 위에 파란색을 덧칠한 흔적이 있다. 일장기를 가지고 손수 꾸며 만든 태극기였다. 나는 일장기를 재활용한 태극기에서 일제강점기 35년의 세월을 감내하고 광복을 맞이했던 당시 한국인들의 감격과 환희를 느낀다.”

책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는 역사 컬렉터인 저자의 수집품을 통해 보통 사람들의 역사를 생생히 복원한다. 수집가와 수집품들 간의 대화록이자 역사 속 ‘이름 없는 그들’과 나누는 대화인 셈이다. 30여 년 전 강원도 영양군 오산시의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우연히 빗살무늬토기 파편 하나를 발견하면서 열정적인 역사 수집을 시작했다는 저자는 오래된 유물이나 값비싼 예술품이 아니라 영수증과 일기, 편지, 사직서까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묻어 있는 생활자료를 모으는 조금은 특별한 수집가다.


책은 수집품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들을 추적해 역사의 퍼즐을 맞추는 과정이다. 저자는 ‘수집은 단순히 옛날 물건을 찾아 모으는 행위가 아니라 역사의 흔적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역사의 단편들을 만나고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책에 소개된 수집품 중 ‘한국전쟁 중 육상경기대회 기념사진’은 그 과정을 잘 보여준다. 어느 낡은 건물 앞에서 촬영된 이 사진에는 민소매 차림의 학생들과 선생님으로 보이는 성인 남성들이 찍혀 있다. 어느 고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육상대회 우승을 기념해 찍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진이다.

관련기사



여기서부터 수집품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진이 촬영된 시기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7월이다. 전쟁 중에 어떻게 육상대회가 열렸을까? 이런 궁금증에서 호기심이 발동한 저자는 이 학교가 삼척공고라는 사실을 통해 1.4후퇴 이후 북한군이 삼척까지 남하하지 못했고, 전투는 휴전선 근처에서만 고지전 형태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진은 치열한 전쟁 중에도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며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을 기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에는 ‘독립협회 보조금 영수증’ ‘정읍 청년 김남두가 고향에 보낸 엽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손기정 사인’ ‘경기중학교 3학년 김장환의 일기장’ 등 총 14가지의 수집품을 통해 저자가 추적해 낸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디에나 있을 것 같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수집품과 그에 담긴 사연을 통해 격동의 한국 근현대를 살던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다. 1만8,000원.




최성욱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