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강경파, 질문도 토론도 보이콧…민노총 '정파 갈등' 폭발

■'사회적 대타협 승인 결정' 민노총 대의원대회

부결되면 김명환 사퇴에 정파간 전면전…정부 관계도 냉각

"승인땐 사회적 신뢰 쌓기 성공" 평가 속 내홍 수습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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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포인트 사회적대화’ 합의문 승인을 결정할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가 23일 개최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상 처음 온라인으로 열렸지만 강경파의 보이콧으로 질문도 토론도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뿌리 깊은 정파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셈이다.

투표에서 합의문이 가결되면 지난 1998년 이후 22년 만에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노사정 대타협이 성사된다. 민주노총이 우여곡절 끝에 ‘사회적 책임’의 첫발을 떼는 것이지만 정파 갈등의 후유증을 수습해야 할 과제가 남는다. 부결되면 ‘제1노총’으로 덩치만 커졌을 뿐 여전히 투쟁에만 골몰한다는 비판 속에서 내부 갈등이 극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23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홈페이지에 두 건의 질의문이 올라와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6~19일 e메일로 질의를 접수했지만 단 두 건의 질의만 접수됐다.  /민주노총 홈페이지 캡처23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홈페이지에 두 건의 질의문이 올라와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6~19일 e메일로 질의를 접수했지만 단 두 건의 질의만 접수됐다. /민주노총 홈페이지 캡처


◇‘민주’라는 이름도 무색…강경파, 질문도 토론도 보이콧=‘민주노총 71차 임시대의원대회’ 홈페이지에는 이날 단 두 건의 질의문과 한 건의 토론문만 게시됐다. 질의문 두 건은 이번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 합의문 승인에 우호적인 언론노조의 대의원 두 명이 보낸 것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반대파는 무시하기로 전략을 짠 듯하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내 정파 갈등의 단면이다. 잠정 합의문이 나온 지난달 30일 민주노총은 합의문의 문구와 내용을 놓고 이튿날인 1일까지 마라톤 회의를 했고 서명식 당일에는 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 등 강경파 조합원들이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을 사실상 감금해 행사를 무산시키기까지 했다. 이견이 분분해 홈페이지에서도 열띤 토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노골적으로 ‘보이콧’한 것이다. 강경파는 21일 지도부가 개최한 오프라인 토론회에도 반대 의견을 피력할 대의원을 내보내지 않았다.

이날 경향신문사 14층에 위치한 민주노총 사무총국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사무총국 직원들은 서로 별다른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합의문 승인 안건이 부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 이태의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등 강경파가 공개한 ‘합의문 반대’ 대의원 서명에는 총 810명이 이름을 올렸다. 총 대의원 수인 1,480명의 절반을 넘기는 숫자다.

◇부결 시 조기 선거체제로…정파 갈등 극심해질 듯=대의원대회 투표 결과 부결된다면 민주노총의 정파 갈등은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노사정 합의안이 대의원대회의 추인을 받지 못하면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강경파의 김 위원장 흔들기는 각 정파가 차기 위원장직을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진행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은 만큼 김 위원장 임기 동안 추진된 사회적대화의 공과를 놓고 전면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회적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투쟁을 해야 한다는 강경파의 주장이 도드라지지만 내부에서는 ‘제1노총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해야 하며 사회적대화를 하지 않으면 정부에 민주노총의 주장을 전달할 수 없어 오히려 손해’라고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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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김 위원장의 사퇴 공언은 지키는 게 맞을 것이라고 본다”며 “민주노총의 정파 구도는 항상 뿌리 깊게 자리잡혀 있다. 정파 구도 자체가 허물어지지 않으면 분란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합의문이 부결되면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사회적대화 참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노총 간의 관계도 냉각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가 불발된 후 민주노총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반대하는 집회·시위를 열자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일관되게 “불만이 있다면 대화 테이블로 들어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노동시장의 상황이 여유가 있지 않다”며 “액션플랜을 만들어야 하는데 사회적대화를 기다려서 하기 쉽지 않다. 민주노총을 제외하고 한국노총과 경사노위를 중심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결 시 ‘사회적대화’ 첫발…분란 수습이 관건=대의원대회 투표 결과 노사정 합의안이 승인을 받는 데 성공한다면 민주노총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조직’이라는 재평가를 받게 된다. 민주노총이 사회적대화 참여를 시도했던 전례는 2005년에도 찾을 수 있다. 이수호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이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올리자 강경파 대의원들이 이 전 위원장의 의사봉을 뺏고 단상에 올라가 소화기를 뿌리는 등 폭력을 행사한 바 있다. 정리해고제가 도입된 1998년 2·6 노사정 대타협 이후 사회적대화 자체에 대한 불신이 드러난 셈이다.

이처럼 ‘사회적대화 트라우마’가 있는 민주노총이 노사정 합의안을 승인한다는 것은 ‘투쟁밖에 모르는 조직’이었던 민주노총이 ‘투쟁과 교섭을 병행하는 조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도 올해까지인 임기를 지킬 가능성이 높으며 남은 임기 동안 노사정 합의문을 바탕으로 대정부 교섭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위원장은 올해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을 시작으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을 잇따라 만나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노동 대책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다만 조직 내홍 수습이 관건이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정파 압박 폭로’ 사건은 민주노총이라는 껍데기 안에 너무나 성격이 다른 이해집단이 모여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며 “합의가 되더라도 정파 문제를 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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