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이 공화당 후보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 경제는 엉망진창이었다. 2차 석유파동 여파로 물가가 치솟는 가운데 수요가 위축되면서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여기에 지미 카터 정부의 정책 미숙까지 겹치면서 경제지표는 곤두박질쳤다. 물가 상승률은 10%를 훌쩍 넘었고 실업률도 8%에 육박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레이건 후보가 내건 선거 구호가 ‘정부를 떨쳐내라(Get the government off your shoulder)’였다. 규제를 없애고 국민에게 자유를 돌려주겠다는 뜻이었다. 레이건은 대통령 취임 이후 이 공약을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항공을 비롯한 산업을 옥죄고 있던 규제를 없애고 민간 자율성을 확대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경쟁체제가 도입되자 항공권 가격이 하락하는 등 경제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결국 레이건 집권 8년 동안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10%대에서 4%대로 낮아졌고 실업률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후 미국은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유례없는 장기호황 국면을 맞게 된다.
40년 전 미국의 상황을 꺼낸 것은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경제는 글로벌 침체 국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혼돈 상태에 빠져 있다.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경제주체의 힘을 모으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러려면 각 주체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는 이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지금 청와대에는 정부 만능주의가 팽배해 있다. 모든 것을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겠다며 과욕을 부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고용정책이다. 정부는 일자리 문제를 공무원 등 공공 부문 증원을 통해서 풀려고 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늘어난 정규직 공무원만 3만6,000여명에 달한다. 정부는 실업률이 치솟을 조짐을 보이자 재정을 동원해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도 쏟아내고 있다. 문제는 한해 수십조원의 재정이 투입되는 이런 정책들이 후방효과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특히 단기 아르바이트는 혈세 지원이 끊기면 그걸로 끝이다. 재정 부담만 줄 뿐 지속가능성이 없는 사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부 만능주의는 민간 기업에도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해고 제한 등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정작 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노동·규제개혁은 외면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헛다리 짚기 정책의 후유증은 고용통계에서 바로 확인된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괜찮은 일자리들이 사라지면서 청년들의 체감실업률은 26.8%에 달한다. 상황이 나빠지자 구직활동을 포기하는 젊은이들도 속출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자리 재앙이 초래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오죽했으면 경제 사령탑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마저 “청년들의 고용회복이 더뎌 마음 아프다”고 했겠는가.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혼란도 결국은 정부의 지나친 개입에 따른 부작용이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은 글로벌 유동성 홍수 속에 갈 곳 없는 돈이 넘쳐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인데 정부는 오로지 투기꾼 탓만 하며 규제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여기에는 종합부동산세 인상 등 부자 때리기만 하면 서민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정치 공학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 하지만 정책을 정치화한 대가는 서민들에게 고통만 안겨주고 있다. 부동산 규제 강화의 부작용으로 전세금이 치솟자 서민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경기가 최악인 상황에서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것도 정부 만능주의의 한 단면이다.
최근 들어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정부의 할 일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정부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다. 정부는 큰 틀만 정해주고 나머지는 가계와 기업 등 다른 경제주체들이 해결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것이 재정부담을 줄이고 부작용도 막는 길이다. 되지도 않는 정책을 고집하면 후유증만 커질 뿐이다. cso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