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약세는 금융자산과 인플레이션, 궁극적으로 통화정책에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미국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장기적으로 떨어져 부채의 지속 가능성 부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미국 경제 입장에서는 큰 도전이 될 것입니다.”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월가 출신의 경제학자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서울경제신문 창간 60주년 특별 인터뷰에서 달러화가 장기 약세의 초기에 있으며 이것이 미국 경제에 큰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달러화는 지난 2011년 이후 강세를 보여왔으며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달러화지수는 30% 가까이 상승했다”며 “앞으로 몇 년 동안 달러는 하락세로 급격한 조정을 겪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조업체 경쟁력 측면에서 볼 때 달러화 약세가 단기적으로 미국산 제품의 판매를 늘릴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전 세계적인 수요 감소에 혜택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치 교수는 달러화의 장기 약세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우선 그는 낮은 저축률을 제시했다. 안 그래도 낮았던 저축률이 코로나19 이후 재정적자 확대와 맞물려 경상수지 적자폭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내 투자가 국내 저축보다 많으면 외국인들이 그 격차를 메우게 돼 경상수지가 나빠진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위상이 낮아진 것도 한몫한다. 미국이 탈세계화와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 보호무역주의로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잃고 있다는 얘기다. 로치 교수는 “미국은 국민소득의 1.4%라는 매우 낮은 저축률로 코로나19를 맞았다”며 “코로나19를 다루는 데 있어 최악이었을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생각하는 달러의 하락폭은 약 35%다. 올해와 내년에 걸쳐 30% 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락폭이 큰 것 아니냐는 질문에 “달러 가치가 35% 이상 떨어진 적은 과거에도 있었다”며 “1970년대에 비슷한 감소세가 있었으며 1980년대 중반에 2년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도 약 30% 떨어진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연장선상에서 로치 교수는 달러화의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그는 “달러 약세는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나 금의 강세를 동반할 것으로 본다”며 “비트코인이나 금과 같은 귀금속을 진지하게 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럴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봤다. 그는 “내 계산으로는 미국 정부의 부채비율이 130%까지 올라갈 수 있다”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높았던 정부 부채비율이 낮아진 것은 공공 부문 부채가 소폭 줄어든 영향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플레이션의 가속화 때문이었다. 과도한 부채는 인플레이션 위험을 강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높은 물가상승률이 부채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에 이를 용인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로치 교수는 달러화 약세가 추가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반적으로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입물가가 오른다.
비슷한 맥락에서 로치 교수는 코로나19에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가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은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와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면서 저축은 많이 하지 않았다”며 “저축하지 않고 성장하려면 해외에서 자본을 들여와야 하고 막대한 경상수지 및 무역 적자를 감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미국은 외국자본을 필요로 한다”며 “세계화가 끝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미국 경제의 더블딥(double dip·이중침체) 확률에 대해서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답했다. 그는 “경기침체가 더블딥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며 “셧다운(폐쇄)을 해제하면 자동적으로 아주 낮은 수준의 플러스 성장을 하게 되지만 중요한 것은 3·4분기 들어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이 정상화하면서 생산 쪽인 공급은 돌아올 수 있지만 미국 소비자들이 (외부에서의) 소비를 두려워하면 수요 측면이 회복되기 어렵다”며 “이는 비대칭적 정상화로 더블딥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가을께 코로나19의 2차 유행 가능성도 매우 높다는 게 그의 예상이다. 로치 교수는 “미국의 경기회복은 소비자의 행동과 참여 의지와 관련이 있다”며 “레스토랑과 소매점 등이 영업을 일부 재개하고 있다지만 기껏해야 부분적인 수준”이라고 했다. 실제 미국은 전체 경제의 3분의2를 소비가 차지한다.
오는 11월 대선에 대해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3년 반 동안 온 길을 계속 가면 미국은 매우 걱정스러운 미래에 직면하게 되고 세계 역시 큰 고통을 받을 것”이라며 “반면 조 바이든 전 부통령도 코로나19로 인한 보건과 인종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누가 되든 국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미중 관계는 1차적으로 11월3일 미국 대선 때까지 갈등의 수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로치 교수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같은 대중 매파가 제기하는 대중 압박이나 제재 조치 가능성에 대한 얘기는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그 어느 것도 믿지 않는 게 좋다”며 “다만 선거를 앞두고 미중 관계가 매우 도전적이며 최소 대선 때까지 이러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와 관련해 공화당의 유일한 대응책은 중국을 비난하는 것이고 그 모든 책임을 중국에 돌리기 위해 인종적인 발언까지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선되면 중국에 더 강하게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로치 교수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통령에 오른다면 정책에 있어 예측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라면서도 “기술이전과 지적재산권, 사이버 보안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매우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논의됐던 사안들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다만 트럼프 정부처럼 (관세를 통해) 상대방을 벌주기보다는 중국에 굴하지 않으면서도 타협을 통해 공통점을 찾게 될 것”이라며 “이 과정은 트럼프 행정부 때와 달리 더 투명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저명한 월가 출신 경제학자 스티븐 로치…'아시아통' 평가도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월가 출신의 경제학자로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 아시아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며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회장을 지냈다. 이 때문에 ‘아시아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오랫동안 월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코노미스트 가운데 한 명으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함께 대표적인 비관론자로 꼽혀왔다. 지금은 세계화와 무역정책·자본시장 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1945년생으로 1971년 뉴욕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구원과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지금은 예일대 경영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면서 잭슨글로벌문제연구소 수석 펠로도 맡고 있다.
‘아시아통’답게 2014년에는 책 ‘균형이 무너진:미국과 중국의 상호의존성’을 통해 미중 경제관계의 위험과 발전 가능성 등을 다뤘다. 2009년 나온 ‘다음 시대의 아시아:새로운 세계화를 위한 기회와 도전’은 아시아 지역의 경제적 불균형 문제를 파헤쳤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