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퇴직금 대란’이 우려된다.
코로나19로 일감이 줄어 최근 몇 달 사이 임금이 평소에 비해 훨씬 줄어든 근로자들은 제대로 된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반면 회사 입장에서는 경영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예년처럼 퇴직금을 챙겨주기 부담스럽다. 기업들은 그동안 대법원 판례에 따라 퇴직금 산정 기준을 적용해왔지만 사상 총유의 코로나19 여파로 자금사정이 악화된 일부 중소·영세기업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005380) 노조는 사측에 올해 임금피크에 돌입하는 약 1,000명의 1961년생 근로자들의 퇴직금 정산시기 조정을 요청했다.
현대차는 그동안 임금피크에 들어가는 근로자들의 퇴직금을 계산할 때 만 59세 6개월과 만 60세 6개월 중 3개월 평균임금을 비교해 근로자에게 유리한 기간의 평균임금을 정산 기준으로 적용해왔다. 하지만 노조는 코로나19로 잔업과 특근 등 일감이 줄면서 최근 몇달간 평소보다 훨씬 적은 급여가 지급됐기 때문에 평균임금 산정기간 중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은 기간을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지난 2월부터 국내외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하면서 몇달간 잔업과 특근도 함께 줄어 현대차 근로자들의 임금은 평소 대비 크게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대법원 판례 등을 고려해 협상에 나설 방침이다. 대법원은 지난 1995년 퇴직을 앞둔 택시회사 직원들이 퇴직금을 많이 받기 위해 퇴직 직전 몇 달 동안 평소보다 훨씬 많은 수입금을 입금한 사건에 대해 “퇴직금 정산을 앞둔 직전 몇 달 동안 평균임금이 현저하게 높아지거나 낮아진 경우 평균임금을 산정할 때 해당 기간을 제외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비정상적인 임금을 퇴직금 산정의 근거로 삼는다면 근로자 통상의 생활을 종전과 같이 보장하려는 퇴직금 제도의 근본취지에 어긋난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후 기업들은 비정상적인 급여가 발생한 달을 뺀 직전 3개월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보너스나 상여금이 연초나 연말에 집중되는 기업들은 아예 12개월 평균임금을 퇴직금 산정 기준으로 잡기도 한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대법원 판례는 노사 모두에 합리적인 퇴직금 정산을 위해 비정상적인 월급을 퇴직금 계산에서 빼도록 한 것”이라면서 “다만 별도 정산 기준은 법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어 각 기업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문제는 코로나19로 자금사정이 악화돼 현실적으로 판례에 따라 퇴직금을 지급하기 어려운 중소 영세기업들이다. 게다가 법적으로 별도의 평균임금 산정방식도 규정돼 있지 않다 보니 퇴직금 정산 기준을 놓고 노사 간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도 높다. 노 측은 코로나19로 급여가 줄어든 직전 3개월이 아닌 다른 기간으로 평균 임금 산정을 원할 수밖에 없다. 한 자동차 부품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예상치 못한 경영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직원들의 퇴직금을 기존 기준에 맞춰 그대로 지급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회사 사정이 워낙 어렵다 보니 일부 퇴직자들에게는 퇴직금 지급연기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 코로나19가 발생한 후 퇴직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인크루트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직장인 631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코로나19 이전 해고자의 퇴직금 수령비율은 48.9%인 반면 코로나19 이후 해고자의 수령비율은 42.3%로 줄었다. 기업 규모에 따라서도 지급 비율이 달랐다. 대기업 해고자의 77.6%는 퇴직금을 지급 받은 반면 중견기업 54.3%, 중소기업 40.6%로 기업 규모가 작아질수록 지급 비율이 크게 낮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