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6년 8월12일 북미 마운트호프(현재 로드아일랜드 브리스틀카운티 인근). 영국 이주민과 1년 3개월째 싸우던 왐파노아그족 추장 메타콤이 총에 맞아 죽었다. 사살한 사람은 인근 부족의 개종 원주민. 평소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게 행동해 ‘필립왕’이라고 불렸던 메타콤의 사망으로 ‘필립왕의 전쟁’도 사실상 끝났다. 영국인들의 북미 대륙 정착 초기 가장 치열한 싸움으로 평가되는 이 전쟁으로 인한 원주민 사망자는 약 6,000여명. 영국 이주민도 약 1,000명이 죽거나 다쳤다. 정착촌도 절반 이상 불탔다. 다른 전쟁에 비해 사상자가 많지 않았지만 필립왕의 전쟁은 전환점이었다.
첫째, 대륙의 주도권이 몽골계 원주민으로부터 백인들에게 넘어갔다. 백인들은 이 전쟁 이후 마음 놓고 영역을 넓혀 나갔다. 반대로 원주민들은 나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몇 차례 저항이 있었으나 찰나에 그쳤다. 둘째, 북미 영국 이주민 특유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원주민과 전쟁에서 본국의 지원을 거의 받지 않고 이겼다는 자부심이 간섭을 싫어하는 성향으로 굳어지고 끝내 독립전쟁으로 이어져 오늘날 미국을 낳았다. 처음에는 관계가 정반대였다. 압도적 우위인 원주민은 이주민들을 ‘불쌍한 손님’으로 여겼다.
이주민들이 북미에 내린 시기가 1620년 초가을. 질병과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이주민에게 왐파노아그족은 칠면조 등 식량과 씨앗을 나눠주고 현지 토양과 기후에 맞는 농사법을 알려줬다. 풍년을 맞은 이듬해 가을, 이주민들이 은인인 왐파노아그족을 초청해 음식을 나누고 원주민 전통에 따라 사흘간 축제를 즐긴 게 미국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다. 평화는 곧 깨졌다. 이주민의 급증과 땅을 둘러싼 원주민과의 갈등 탓이다. 세가 불어난 이주민들은 북미를 신이 백인을 위해 마련한 땅으로 여겼다.
대신 인간에 대한 은혜는 악행으로 되갚았다. 개종하지도, 땅을 내놓지도 않는 원주민은 사탄의 무리라며 짓눌렀다. 마침 뉴암스테르담(오늘날 뉴욕)의 원주민 학살로 경계심이 높아진 상황. 메타콤 추장의 측근 3명을 이주민들이 개종원주민 살해 혐의로 처형하자 누적된 불만은 필립왕의 전쟁으로 터졌다. 백인들은 본보기로 삼기 위해 메타콤 추장의 머리를 20년 넘게 거리에 걸었다. 필립왕 전쟁기인 1675년에 제정된 보스턴의 ‘원주민 출입금지법’도 2004년에야 없어졌다. 지독하다. 땅을 빼앗으려는 백인의 탐욕과 종교적·인종적 오만은 남의 일일까. 단어 몇 개만 바꾸면 딱 우리 얘기다. 부동산에 대한 탐욕과 종교적·계층적 우월감.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