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해 14일 동네 의원 상당수가 문을 닫는다. 대학병원도 전공의와 전문의 일부가 휴진에 동참해 외래진료 대기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휴진에 동참하겠다고 밝힌 의료기관은 지난 13일 오후2시 기준 전국 3만3,836개 기관 중 24.7%에 해당하는 8,365곳이다. 앞서 의협 회원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5.6%가 파업 등 집단행동에 돌입하거나 의협 결정에 따른다고 밝힌 만큼 실제 파업참여 의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의사 수 더 늘려야 ‘3분 진료’ 사라진다는데…
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한방 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 육성에 반대해 이날 전국 의사 총파업에 나선다. 대학병원 전공의와 진료 일부를 담당하는 임상강사(전임의)도 파업에 참여하면서 외래진료를 받는 환자들의 불편이 예상된다. 단 응급실과 중환자실·투석실·분만실 등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부문의 의사는 정상적으로 업무를 본다.
의사들이 가장 불만을 갖는 지점은 의대 정원 확대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역 간 의료 격차의 심각성과 의료의 질을 앞세워 의대 정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의사수가 서울 3.1명, 경북은 1.4명으로 두 배 차이지만, 서울 종로구(16.27명)와 강남(9.86명), 중구(6.80명) 등 3개 최다 지역 평균은 10.57명으로, 최소지역인 경북 군위·영양·봉화(0.75명)보다 무려 14배 많았다. 또 뇌졸중 등 응급질환이 생겼을 때 사망률은 서울 동남권이 0.84~0.85%인 반면 강원 영월권은 2.04~2.09%로 두 배 이상 높았다. 응급의료기관이 없는 시군구는 32개로 부산 사하, 경기 과천 등 8개 지역은 동네병원 응급실조차 없어 위급한 상황 시 다른 동네로 가야 했다.
김헌주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적재적소에 의료인력을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OECD 11개국의 일차 의료기관 진료 시간은 17.5분이지만 한국은 4.2분”이라며 “(의사 1명이) 더 많은 환자를 보게 되고, 환자를 보는 시간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적어진다”고 지적했다. 의사 수를 늘려야 의료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의사 수는 충분히 많다”는 의사들의 말은 맞을까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국내 의사 수가 지금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즉 국내 일부 지역에서 의사가 부족한 문제는 배치를 적절히 못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의협 측은 의사 스스로 기피 과목이나 지역에 갈 만한 인센티브를 주면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공단 내부자료에 따르면 의사들의 월평균 임금은 전남 1,683만원, 경북 1,627만원인 데 반해 서울과 대전 등 대도시는 1,200만원 안팎에 그친다. 돈을 벌고 싶다면 지방으로 가면 된다는 사실은 의사 누구나 알고 있다. 보상만이 답은 아니라는 얘기다. 개원의와 임금 근로자 간 월평균 소득 격차는 지난 2011년 5.7배에서 2017년 6.7배로 점점 벌어져 의사들이 물질적 풍요를 더 많이 누리고 있다는 점도 이를 지지한다.
의협은 한국의 의사 증가율이 OECD 최고 수준이고 오는 2040년에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4명까지 늘어 의사 과잉 문제가 도래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인구 1,000명당 한국 의사 수가 2.3명, OECD는 3.4명으로 우리의 의사 모수가 워낙 적다 보니 증가율이 커 보이는 착시에 불과하다. 실제 인구 10만명당 의대 졸업자는 2010년 한국 8.2명, OECD 10.3명에서 2016년 각각 7.9명과 12.0명으로 더 벌어졌다. OECD가 훨씬 많은 의사를 배출하는 셈인데 이 때문에 한국 의사 수가 OECD 현재 평균에 도달하는 2032년이 되면 OECD는 4.4명까지 늘어 격차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저출산 고령화로 의사 수가 더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 역시 반쪽짜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10년 후 국민 4명 중 1명이 62세 이상, 국민 2명 중 1명은 만성질환자로 예측돼 앞으로 의료수요는 더 증가할 것”이라며 “현재 의료인력만으로 대비가 충분한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진료 개시 명령’ 발동할까
앞서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13일 담화문을 통해 “정부는 의사협회 집단휴진 과정에서 불법적인 행위로 환자의 건강과 안전에 위해가 생긴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며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추후 행정 처분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업무 개시 명령을 내리겠다는 압박 카드도 꺼냈다. 지방자치단체에 지역 내 진료기관 휴진 비율이 30% 이상일 경우 ‘진료 개시 명령’을 발동하라는 기준을 제시했는데, 이를 어기는 의료기관은 업무정지 15일, 의료인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의협은 강력히 반발하며 파업 동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정부가 의료기관에 이런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근거는 의료법 59조로 이번 투쟁을 통해 단체행동권을 부정하는 악법 역시 철폐시킬 것”이라며 파업 의지를 다졌다. 개원의들의 파업 참여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한편 대학병원 임상강사들에게는 예약된 진료를 포기하고 휴진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또 “하나의 의료기관이라도 업무 정지 처분을 당하면 13만 회원 모두 업무를 정지하고 면허증을 불태우겠다”며 맞받았다.
양 측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는 커지는 중이다. 대학병원의 한 관계자는 “임상강사들은 예정된 진료를 본 뒤 집회에 참석하는 식으로 집단행동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연차 투쟁으로 돌아설 경우 외래 진료가 교수들에게 몰려 대기시간이 길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