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기사들은 바둑 한판을 두고 나면 복기(復棋)를 한다. 이긴 사람은 승리를 뽐내고 싶고 진 사람은 바둑판을 바로 떠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방금 둔 바둑의 수순을 돌아보고 잘잘못을 짚어가며 토론하는 복기 과정을 꼭 거친다.
정치권에서 2차 재난지원금을 주자는 논의가 일고 있지만 지난 재난지원금을 복기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첫 재난지원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 극복을 위해 기본소득을 주자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의 제안으로 촉발됐다.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는 처음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정치권의 요구로 마지못해 중하위 계층 50%에 주기로 계획을 짰다. 하지만 당정협의 과정에서 70%로 확대되고 선거가 임박해지자 100%, 즉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기로 확정했다. 당시 야당도 선별지급을 주장하다가 전 국민 대상으로 태도를 바꿨다. 재난지원금이 뚜렷한 목적이나 원칙에서 나온 게 아니라 정치적인 산물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여야 정치권이 주도하는 2차 재난지원금 논의에는 걱정이 앞선다. 더욱이 유력 대권주자인 이 지사가 전 국민 지급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어 파장이 우려된다.
재난지원금을 두 번 주기로 지난봄에 이미 결정해놓았던 미국도 아직 2차 지원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코로나19 확진자 570만명, 사망자 17만명으로 2·4분기 경제성장률 -32%의 심각한 피해를 겪은 미국보다 우리가 앞서 2차 지원금을 줘야 하는지 곱씹어봐야 한다. 꼭 주겠다고 하면 ‘추가 소득지원 시에는 취약계층에 집중’하라고 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 경제 보고서의 권고를 새겨들어야 한다.
1차 재난지원금의 재원 문제도 되짚어봐야 한다. 정부는 처음에 기존 예산을 절약해 필요한 7조원 정도를 마련할 수 있으므로 추가 부담이 없다고 했다. 대상이 확대되며 10조원으로, 다시 14조원으로 소요가 확대됐지만 늘어나는 돈에 대한 부담에는 신경을 쏟지 않았다. 금모으기운동 같은 국민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국고 부담이 느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기부에 참여한 사람들은 극히 적었다. 애초에 계획했던 숫자를 초과한 100.2%의 가구에서 재난지원금을 신청했고 이들이 받은 돈 중 기부한 금액은 전체 14조원 가운데 300억원이 채 안 된다.
올해 재정적자가 111조원이며 국가채무 총액은 839조원이다. 재난지원금의 재원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이나 희망 섞인 기대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전체가 고스란히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증가로 귀착됐다.
지방자치단체의 재난지원금 지급도 중구난방이었다. 11개 광역자치단체에서 국가가 주는 돈 외에 자체적인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는데 금액도, 대상도 따로따로이고 지역화폐 사용을 강조하느라 혼란을 가중시켰다. 국가 재난지원금보다 앞서 신청을 받아 자체 지원한 결과 경기도에서는 재원이 모자라 대통령이 정한 국가 재난지원금액을 다 채워서 주지 못한 사례도 발생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차 재난지원금을 준다면 부담의 100%를 국채발행으로 조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쉬운 말로 국민의 빚으로 마련한 돈으로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준다는 것이다. 선택은 국민의 몫이다.
바둑 복기는 혼자 하지 않고 승자와 패자 그리고 다른 동료들도 같이 참여한다. 여야 정치권 정부 그리고 정책전문가들이 중지를 모아 한국 경제가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선의 수를 발견하기 바란다.